내가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딘 1970년대 초만 해도 한국은 서울이라도 낮은 건물과 논밭이 대부분이었고, 도로 위에서 볼 수 있는 자동차도 '피아트 124'와 현대차 포니 정도였다. 당시 나는 한국이 지금과 같은 경제대국으로 변신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역사상 유래 없는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굴지의 글로벌 기업을 거느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다.
그 사이 나에게도 큰 변화가 있었다. 한국닛산과 르노삼성자동차, 크라이슬러코리아를 거친 다년간의 한국 생활로 나는 어느새 반(半)한국인이 됐고 사랑하는 내 아내의 고향인 한국이 '제2의 고향'이 됐다. 내 개인적 배경을 잘 아는 지인들은 한국이 이처럼 빠른 경제 발전을 이룬 비결을 종종 묻곤 한다.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확고하다. 한국 경제의 원동력은 특유의 끈끈한 정을 바탕으로 단단한 연결고리로 맺어져 있는 기업과 직원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말이다.
2006년 내가 미국에서 돌아와 한국닛산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두 나라 간의 확연히 다른 기업문화였다. 미국의 기업문화가 개인적이며 결과지향적이라면 한국 기업은 놀랄 만큼 관계지향적이었다. 내가 미국에서 일할 때는 업무적으로 팀워크를 이뤄 서로 협력하면서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근무 시간이나 근무 외 시간에 동료들과 회식이나 술자리 등의 사적인 자리를 함께했던 기억은 거의 없다. 회사 일을 마치면 집에 돌아가 가족이나 친지와 보내는 게 일상이었다.
반면 한국의 직장문화는 정반대다. 신임 사장인 나를 따뜻하게 맞이했던 환영 회식. 전 사원이 모두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먹으며 술을 나누고 담소를 즐기던 모습이 생생하다. 사무실에서 나누기 힘들었던 속마음을 터놓고 더 잘해보자며 다독이고 더 잘해보겠다며 용기를 얻었다. 퇴근 후에도 회식 등으로 친목을 다지는 모습이나 새로운 동료가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마음 써 주는 문화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합리적인' 미국 기업의 사내문화를 동경하는 직장인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이 같은 문화는 미국 기업이 갖지 못한 장점을 많이 지니고 있다. 한국의 관계지향적인 기업문화에서는 홀로 도태되는 사원이 적어진다. 조직이 개인을 챙겨주는 만큼 개인도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지게 된다.
'정'에서 비롯된 공동체 정신을 함양한 한국 사원들의 충성심과 열정이야말로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의 저력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다. 이와 함께 풍부한 해외 경험을 통한 글로벌 의식을 가진 인재들의 증가로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나 현대차가 지구촌 곳곳에서 승승장구하며 세계 일류 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의 관계지향적 기업문화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새로운 시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또 다른 한 축은 '조화와 효율'이다. 즉, 관계지향적인 한국의 기업문화와 결과지향적인 미국의 그것이 함께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보다 효율적으로 한 단계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40여년 전 내가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당시 도로를 씽씽 달리던 피아트 브랜드를 이제 내가 직접 국내에 다시 소개할 차례다. 멀고 긴 시간을 돌아 처음 그 자리로 돌아온 듯해 감회가 새롭다. 한국에 새로 진출하는 피아트와 이제 입지를 굳혀 가는 크라이슬러코리아 또한 나와 같이 한국의 매력에 감화되는 브랜드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그렉 필립스 크라이슬러코리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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