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민원인 변호를 넘어.. 利害 극복한 시정철학, 박원순스럽게 관철하십시오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만약 5000만원짜리 물건이 있다고 치자. 평범한 사람들은 500만원쯤 후려친 다음 4700만원 정도에 사려 들거다. 그렇다면 장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협상을 시작할까?”
최근 만난 한 공기업 사장이 질문을 던졌다. 여러 가지 추측이 있었고 절반을 잘라 협상을 시작할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전혀 아니올시다”라고 했다. “300만원에 사겠다고 할거다. 자신도 장사하는 사람이어서 주인의 속사정을 알기에 얼토당토 않은 가격을 제시한다. 결국엔 실랑이 끝에 1000만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물건을 사간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장삿꾼이 그렇다는 것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얘기다. 다만 기본적으로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부류가 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1000만명의 시민이 수십년간 난마처럼 얽힌 관계 속에서 살아남으려 바둥거리는 동안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는 탐욕이 자라났음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해(理解)관계가 아닌 이해(利害)관계로 점철돼 있어서다.
복지와 개발, 교통, 환경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서울시민들의 이해는 엇갈린다. 20조원이 넘는 서울시 예산은 한정돼 있고 이를 어떻게 배분, 투입해야 효율적일지에 대한 판단은 서울시를 이끌어가는 시장이 해야 한다. 메트로폴리스 속에 살아가는 시민들은 과정을 중시하면서도 당장 나에게 이득이 될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본다. 성질 급한 사람들이 많기도 하다.
따라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박 시장은 이런 여건 속에서 서울시 행정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현장을 중시하는 부지런함과 꼼꼼함이 베인 스타일로 인해 서울시 공무원들은 박 시장을 '실무가형 리더'로 평가한다.
무상급식이나 반값등록금 등 복지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토건예산’을 ‘복지예산’으로 전환하려는 철학이 돋보인다.
최근희 한국도시행정학회 회장은 "이제는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보니 사람들이 개발이나 성장보다 복지ㆍ안정을 중요시하고 있다"며 "현 사회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각은 새롭다"고 언급했다.
따라서 시민운동가 시절 보여준 혁신적 아이디어를 행정가이자 정치가로서 서울시정에 담는 것이 시급하다. 탐욕에 찌든 기업들에 기부문화를 폭넓게 정착시키며 착한기업을 배출한 장본인으로서 강한 추진력을 갖고 ‘착한 서울’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변호사로서 편한 삶을 버리고 몸을 낮춰 그늘진 곳을 살핀 전력처럼 소외된 이웃들까지 어루만져 줄 의무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민원에 어물대서는 안 된다. 일방적인 주장을 접할수록 일은 더욱 꼬인다. 소통을 강조하는 만큼 다수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큰 그림만 강조한 나머지 구체적으로 필요한 조치들 없이 허황된 대책들이 나오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숲을 볼 수 있도록 참모들을 잘 기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그래서 나온다.
박 시장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울시 수장에 오른 원동력은 20~30대가 기존 정치에서 느낀 '박탈감'이다. 모토로 내건 복지사회, 희망서울이 그들의 요구에 정확히 들어맞았던 것이다. 박 시장의 임기는 오세훈 전 시장의 잔여임기인 2014년 6월30일까지다. 2년이 넘게 남았지만 내놓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배경환 기자 kh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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