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발렌타인(장 뒤자르댕)은 무성영화 최고의 스타다. 존재만으로도 영화의 헐거운 부분을 조여주고, 관객들은 화면 가득 웃는 그의 얼굴을 보기위해 극장을 찾는다. 그의 팬인 페피 밀러(베레니스 베조)는 명랑한 배우 지망생이다. 경쾌한 스텝으로 날아갈듯 춤추는 그녀는 영화 관계자의 눈에 띄고, 단숨에 주목받는 신예가 된다. 그러나 영화산업의 중심이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변화의 한 가운데에서 둘의 위치는 역전된다. “사람들은 내 목소리를 들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 조지는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무성영화를 만들지만 텅 빈 극장에는 정적만이 흐르고, 같은 시각 페피의 새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선다. 이렇게 조지와 페피는 잠시 스친 뒤 영영 엇갈리고 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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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 자체가 주인공인 영화
아카데미 10개 부문 후보,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골든글로브 3개 부문 수상 등 영화가 거둔 화려한 성과에 비해 <아티스트>는 소박하다. 눈을 사로잡는 현란한 시각적 효과도, 놀랍도록 새로운 플롯도 없다. 오히려 이야기는 나락으로 떨어진 남자와 그를 돌보는 여자 그리고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이들이 맞이할 빛나는 내일까지, 오래된 멜로의 공식을 착실하게 따른다. 대신 <아티스트>는 시간이 흘러도 살아남을 장면들을 남긴다. 1920-3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의 경이로운 한 때를 연상시키는 순간들과 무성영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재치는 <아티스트>가 ‘21세기에 만들어진 흑백 무성영화’라는 모험적인 시도에만 기댄 기획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아티스트>는 아직 영화가 마법이었던 때의 공기를 현재의 영화관에 불어넣으면서 한층 더 특별해진다. 태생이 기술과 자본이 집약된 산업이었던 영화는 그것을 보면서 울고 웃는 관객과 만나 영혼을 얻을 수 있었다. <아티스트>는 그 화학작용이 이루어지던 때로 순간이동 한다. 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개봉작 프리뷰를 훑어보고, 예매 사이트의 버튼을 클릭한 뒤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盛粧)을 하고 찾은 극장에서 스크린이 켜지는 순간까지 모두가 떨림을 공유하던 때로,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어떤 효과음보다도 생생하게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던 현장으로 말이다. 그렇게 <아티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풍경은 어느새 영화 안에서 만난 극장과 닮아 있을 것이다. <아티스트>는 영화적 테크놀러지의 정수를 경험하고 있는 시대가 이 모든 것들이 있기 전의 시대로 부친 사랑스러운 러브레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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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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