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 造船까지 불안케 하는 풍랑 海運..지금 손써야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해운 시황 침체가 장기화되고 유럽발(發) 재정위기가 겹치면서 해운업의 위기가 또다시 조선업 등 연계산업의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돈줄이 마른 해운사 및 선주들이 선박 발주를 취소하거나 인도를 연기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2008년 금융위기 직후와 같은 패턴의 '더블딥'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위기에 봉착한 해운업계는 '해운이 살아야 조선도 살 수 있다'며 선박금융 지원 등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불황기에 해운사의 돈줄을 죄는 것이 아니라 다음 호황기를 내다본 지원을 펼쳐줘야 해운은 물론 조선·금융 등 연계산업까지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자금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대만 해운사 TMT는 한국 조선사에 발주한 선박 중 드릴십 1척, 초대형 유조선 2척, 벌크선 2척, 초대형 광석 운반선(VLOC) 1척 등 총 8척을 아직까지 인수하지 않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말 선주 측 사정으로 VLOC, 벌크선 등 5900억원 규모의 수주계약을 취소했다. 삼성중공업도 유럽 선사인 유로나브가 발주한 수에즈막스 탱커 4척 중 3척의 인도 시기를 미루고 1척의 계약을 해지했다. 성동조선해양은 금융위기 이후 수주한 선박 중 17만DWT급 벌크선 4척 등을 선주 측 사정으로 취소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이 해운·조선업계에 그대로 미쳤던 2009년과 비슷한 패턴이다. 해운사 및 선주들이 자금난에 처하며 계약 취소 및 인도 연기 사례가 잇따르는 것이다. 최근 부진한 시황, 연료비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데다 유럽발 재정위기 등으로 다수 은행들이 선박금융 규모를 축소한 것도 여파를 미쳤다.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지난해부터 상선보다 해양 플랜트 등에 집중하며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으나 향후 계약 취소 및 연기가 늘어날 경우 타격이 불가피해 우려감을 표하고 있다. 벌크선, 유조선 등 상선 위주의 사업구조를 갖고 있는 중소 조선사와 조선 기자재 업체는 이미 직격탄을 맞은 상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사들은 건조 대금의 20%를 선수금으로 받은 후 인도까지 4~5번에 걸쳐 건조 대금을 나눠 받는다”며 “인도 시기를 늦추면 그만큼 돈 들어오는 시기가 뒤로 밀리는 것이므로 매출, 영업이익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해양 플랜트 위주로 수주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형 조선사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에 속하지만 향후 몇 년간 조선업계의 어려움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사태가 재연되자 해운업계에서는 선박금융 등의 지원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해운업황이 해운사뿐 아니라 연계산업인 조선, 금융, 철강, 기자재 등에도 큰 여파를 미치는 점을 감안할 때 수요산업인 해운업을 먼저 활성화시켜 이에 따른 자금이 연계산업 쪽으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중국, 덴마크, 인도 등 대다수 국가들이 대규모 금융지원을 통해 국가 기간산업인 해운업 살리기에 나섰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상황이 악화될 경우 대형 해운사들조차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미 국내 4위 해운사인 대한해운이 지난해 초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기도 했다.
한 대형 해운사의 고위 관계자는 “지금 해운업이 회복되지 않으면 2년 뒤 누가 배를 짓겠느냐”며 “선가가 낮을 때 투자해 효율성을 높여야 하지만 선박의 담보가치 하락 등을 이유로 금융지원을 막아버려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수요인 해운업이 먼저 회복돼야 조선, 기자재 산업도 회복되는 법”이라며 “2008년 이후 경쟁력이 약한 영세 선사들의 구조조정은 어느 정도 이뤄졌다. 업종 특성을 감안한 국가 기간산업 육성 및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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