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하나. 베이루트는 어느 나라의 수도입니까? 그렇다면, 레바논은 어느 대륙에 속해 있습니까? 정답을 맞추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밴드 베이루트에게 이 도시의 지리적 의미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모잠비크든 타슈켄트든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어디 먼 곳, 가 본 적 없는 곳, 어쩌면 평생 가 볼 일 없는 곳이면 됩니다. 미국 청년 잭 콘돈의 개인 프로젝트에서 출발해 이제는 대식구가 된 이 밴드가 노래하는 것은 바로 그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미지의 장소, 불확실한 사건들과 낯선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모여 있는 곳으로의 여행을 앞둔 설렘이 바로 베이루트의 음표들인 셈입니다. 온갖 관악기와 현악기, 심지어 건반까지 뒤섞인 이들의 음악은 간신히 유럽의 동쪽 어딘가를 떠올리게 할 만큼 그저 새롭습니다. 하지만 어떤 여행지에서나 햇살과 바람, 바다와 풀숲을 발견하듯 이들의 음악에서도 마음에 남는 것은 결국 따뜻하고 나른한 늦은 오후의 냄새이지요.
그리고 이들의 세 번째 앨범 < The Rip Tide >에 수록된 ‘Santa Fe’는 오랜 여행 중에 문득 떠올린 고향에 대한 노래입니다. 산타페에서 산타페 고등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여행을 떠나 버린 남자에게 고향은 아주 오래전 길게 여정을 풀었던 여행지에 다름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일들은 아득해지고, 목소리는 아련해지는 법이지요. 기억을 다듬고 마음을 한발 뒤로 물리는 순간 풍경은 더 이상 익숙하지 않고, 거기서 설렘이 자랍니다. 여행이 가진 치유의 힘이 바로 이것입니다. 서랍 속에 넣어 둔 베이루트의 앨범이 상비약처럼 든든한 이유 역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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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윤고모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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