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대ㆍ중소기업 간 동반성장ㆍ공생발전 다짐 선언이 공허하게 비쳐지는 곳들이 있다. 바로 빵집과 라면ㆍ순대ㆍ떡볶이 등 주로 영세 상인들이 소규모 가게를 열어 장사하는 골목상권이다. 대기업들이 기업형 슈퍼마켓(SSM)으로 동네 구멍가게를 몰아낸 데 이어 빵집과 분식집까지 위협하고 있다.
특히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과 재벌가의 공세에 동네빵집이 고전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2003년 초 1만8000여개였던 동네빵집은 지난해 말 4000여곳으로 줄었다. 8년 사이 77.8%가 감소한 것이다. 반면 대기업 프랜차이즈인 파리바게트는 지난해에만 매장 300여개를 여는 등 1986년 이후 연평균 120개씩 점포를 늘리고 있다.
여기에 재벌가 2ㆍ3세 딸들이 커피 전문점과 제과점을 결합한 형태의 럭셔리 베이커리 사업에 나서면서 동네빵집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호텔신라ㆍ신세계ㆍ롯데ㆍ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들이 앞다퉈 브랜드를 달고 경쟁하고 있다. 이 밖에도 LG그룹과 CJ, 대명그룹은 계열사를 앞세워 라면ㆍ순대와 비빔밥, 떡볶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내 돈 갖고 사업하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예부터 장사에도 지켜야 할 상도와 금도가 있다. 세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돈만 벌 수 있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발상은 창의와 도전의 기업가정신이 아닌 오만한 자본가의 탐욕이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지난주 한 세미나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제를 풀었더니 대기업이 커피숍이나 입시학원을 경영한다"고 꼬집었다.
대기업 단체는 정권 말기나 선거철이면 정치권이 기업을 옥죈다며 불만이지만, 대기업도 낮은 자세로 스스로의 행태를 돌아보아야 한다. 자영업자나 영세기업에 맡겨야 할 빵집ㆍ분식집까지 넘보면서 아무리 상생 구호를 외쳐봐야 설득력이 떨어진다. 소자본으로 비교적 쉽게 창업할 수 있는 업종은 서민 몫으로 돌려주고, 대기업은 자본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미래형 성장산업에 매진해야 한다. 대기업이 골목대장 노릇을 해서 되겠는가. 대기업은 대기업다워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국민에게 더 사랑받고, 정치권도 선거 때 대기업 길들이기 유혹에서 벗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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