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회사원 김모(50) 씨는 출근길 신문을 읽다 무심코 눈에 띈 '오늘의 운세'를 읽고 기분이 마냥 들떴다. 이번 주 승진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에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꿈꾸던 기회에 날개를 단다"는 운세 풀이에 어쩐지 좋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웬걸, 사무실에 들어와 펼친 또 다른 조간신문 운세 코너에는 "62년생, 업무 문제로 고민할 수도"라는 문구가 떡하니 적혀 있는게 아닌가.
김씨는 "이번에 임원 승진을 못하면 사실상 명퇴를 해야 하는데, 운세 풀이 한 줄에 가슴이 쿵광거린다"고 하소연했다.
누구나 한번쯤 관심을 갖고 보는 '오늘의 운세'. 좋은 얘기가 적혀 있으면 괜시리 기분이 좋고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재운이 있다'는 풀이가 나온 날에는 퇴근길 로또 판매점을 기웃거리게 되기도 한다.
"요즘 같은 시절에 누가 운세를 믿어?"라고 무심한 척 해도 어느새 본인의 띠와 생년에 눈길이 가기 마련.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동시에 여느 뉴스 못지 않은 열독률을 자랑하다 보니 늘 신문 한 구석에 빠지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바로 '오늘의 운세'다.
그렇다면 이같은 운세 풀이는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10일자 조간신문들의 '오늘의 운세' 코너들을 비교해 보자. 같은 출생연도에 비슷한 운세가 나오기도 했지만 전혀 다른 해석이 제시된 경우도 많았다.
말띠인 30년생의 경우 비슷하게 좋은 내용들이다. "환자는 기력이 서서히 회복된다"(A신문), "환자는 대개 고비를 넘긴다"(B신문), "여유 있게 해보자. 승리가 기대된다"(C신문).
용띠인 52년생 운세도 모두 기대감을 갖게 하는 내용들이다. "주변의 추천에 다시 한번 등용된다"(C신문), "능력이 많으니 마음껏 발휘할 것"(A신문), "절친한 사람이 도움을 준다"(B신문).
반면 개띠인 70년생은 상반되게 나와 있다. "이동, 여행, 이사로 활발히 행할 것"(A신문), "비전이 생기거나 일에 탄력 붙을 듯"(D신문), "승진이나 시험은 내일을 기약하자"(C신문).
쥐띠인 36년생의 경우도 "잘하려 하지 마라. 오히려 더디 간다"(C신문)와 "기쁨이 겹치니 즐거운 날이 된다"(A신문)로 엇갈린 운세를 제시했다.
'오늘의 운세'가 정확히 맞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얼핏 생각해도 같은 해에 태어난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하루 동안 같은 운을 가지고 산다는 게 이치에 맞지 않다.
출생연도만으로 사주를 보기란 너무 포괄적인데다 역학자들마다 관점이 다를 수 있다 보니 개개인에게 딱 맞아 떨어지는 운세 풀이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더욱이 신문은 지면 제약으로 20자를 넘지 않도록 글자 수에 제한하다 보니 비슷비슷하고 두리뭉실한 풀이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따라서 운세를 풀이하는 역학자들은 '재미'로 읽을 것을 권한다. 한 일간지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고 있는 조규문 씨는 "젊은 독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을 수록운세를 더 많이 읽는다"며 "세상을 오래 살다 보니 반드시 뜻대로만 되지 않다는 걸 알고, 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조씨는 "운세라는 것이 사실 그날이 지나 봐야 잘 맞는지 틀린지 확인할 수 있지 않느냐"며 "독자들이 재미로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도록 가능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쪽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 명상가 김효성 씨는 독자들이 운세를 일종의 '라이프코치'로 받아들일 것을 주문했다. 복채를 받고 나쁜 일을 피할 수 있도록 부적을 써주는 역술인들과 달리 신문에 실리는 운세는 독자 개개인의 관심과 처한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씨는 "코치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선수보다 잘 뛸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운세란 개개인의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을지, 손을 잡아주고 조언을 해주는 역할로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자들이 심심풀이로 읽고 지나치는 운세라도 이를 매일 같이 풀어내는 역학자들의 수고는 적지 않다. 12가지 각 띠별로 20대부터 80대까지 연령별 운세를 풀이해야 하니 매일 60여개의 운세를 뽑고 이를 글로 옮겨 적는데 최소 4~5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조인경 기자 ik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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