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실패는 끝'에서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는 사회로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아산 정주영 회장 자서전의 제목이자 그의 인생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이 말 한마디는 수십년간 우리나라 재계를 이끌어왔다. 한발만 잘못 디뎌도 후진국의 굴레에서 벗어내지 못한다는 위기감에 절박하게 기업을 이끌어 온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기업간의 경쟁은 이미 재걔 전체의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 기업간의 전통적인 사업 영역도 무너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 회장이 새해 벽두에 '승패병가지상사'를 꺼내 들며 정·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일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와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한 재계 주요 인사들이 화두로 꺼낸 단어는 바로 '실패'다. 다시 말하자면 '승패병가지상사', 즉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자고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길 바란다"면서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정부가 최대한 뒷받침하겠다. 여러분이 뜨거운 열정과 도전, 창의력으로 더 큰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재계 역시 실패를 용인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주문하고 나섰다. 반도체, 디지털TV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를 놓지 않고 있는 삼성전자도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해서는 '위기'라고 표현했다.
이건희 회장은 "실패는 삼성인의 특권"이라고 강조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지금까지의 틀을 깨고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삼성의 미래는 신사업, 신제품, 신기술에 달려 있다"면서 "기업문화를 더 개방적이고 유연하며 혁신적으로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실패를 두려워해 단기적인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실패를 밑거름 삼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달라는 주문이다.
정계와 재계를 대표하는 두 인사의 이 같은 발언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기도 전에 본격적인 선진국형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대변한다.
우리나라의 주 엔진이던 수출은 세계경기 둔화, 원화강세 기조 등으로 증가세가 지속적으로 둔화되고 있다. 내수는 수출둔화를 보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물가도 높고 가계 부채도 늘고 있어 소비 역시 줄어들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회복 지연 및 사회간접자본 예산도 축소돼 건설투자 경기도 하락하고 있다. 결국 기존 사업만으로는 선진국 진입이 어려워 새로운 사업 영역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수많은 실패를 하고도 이를 바탕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제패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역시 사회 전반에 걸쳐 실패했다고 벌할 것이 아니라 이를 곰씹고 더욱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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