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18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강력하게 요구하게 나선 것은 "이제는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있다. 헌법재판소가 '위안부 피해 방치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데다 최근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커졌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일본의 자발적 반성과 사과를 통해 한일 관계의 새로운 지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지만 이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008년 1월 "(일본의) 사과나 반성하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며 "일본도 이제는 그 말을 요구하지 않더라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성숙한 외교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취임후 2009년 6월 일본 민주당 대표를 접견한 자리에서는 "일본이 과거사 문제로 크게 결단하면 한국민들은 미래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딛을 준비가 돼 있다"며 "정치 지도자들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에서 "지난 100년의 과거사를 확실히 청산하기 위해 반성할 일은 반성하겠다"고 역설하고, 같은해 8월10일 간 나오토 총리가 담화를 통해 공식적으로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했다. 하지만 독도ㆍ교과서 문제에서 일본 정부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어조도 확연히 달라졌다. 지난 4월1일 기자회견에서 독도문제와 관련해 "천지가 두번 개벽을 해도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선언한 데에 이어 8ㆍ15 광복절 축사에서는 일본 교과서 역사왜곡을 겨냥해 "지난 역사를 우리 국민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미래세대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칠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를 강력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8월30일 헌재가 정부에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해결에 적극 나설 의무가 있다는 취지의 결정이 계기가 됐다. 정부로서는 일본에 위안부 문제를 제기할 명분을 얻었고, 지금 시기가 가장 적절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아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평화비를 설치하면서 양국 관계의 초미의 관심사가 됐기 때문이다.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앞두고 주도권 싸움에서 헤게모니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도 담긴 것으로 관측된다.
더욱이 지난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한 이후 청와대의 쇄신요구가 잇따르고 있는데다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의혹이 터져나오면서 국내 정치상황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국내 위기를 외부에서 돌파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국민들의 기대보다 더 강도높은 외교전을 펼침으로써 한일 관계를 발전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물론 국민들의 묵은 체증을 풀어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돌려 말했다.
조영주 기자 yj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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