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삼성의 '신상필벌' 인사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공(功)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상을, 그리고 실책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벌을 준다'는 인사 원칙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 인사원칙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는 건 우리 기업들의 인사에 공과와 무관한 요인들이 자꾸 개입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인맥, 학연, 지연 등 실력과는 상관없는 요인이 인사에 끼어들 때 의혹이 불거지고 해당 기업의 신뢰는 의심받게 된다. CEO가 실적뿐만 아니라 공정한 인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산은금융지주 계열사인 KDB생명의 최익종 사장이 임기를 1년여 남겨 놓고 돌연 사의를 표했다. 그동안 전국을 돌며 강행군을 하느라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는 것이 사임 이유다.
그러나 석연찮다는 게 보험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열정을 갖고 소신있게 일해온 최 사장이 너무 갑작스럽게 사의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최 사장은 지난해 3월 취임 직후 전국 영업사원을 직접 만나 독려하는 등 현장중심 경영을 통해 대규모 적자였던 KDB생명을 올해 상반기 중 흑자로 돌려놨다. 그토록 열정을 쏟은 회사를 건강상의 이유로 쉽게 포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 사임 시기가 인사철을 코앞에 둔 시점이라는 것도 의혹을 키우고 있다. 이번 인사는 강만수 회장이 취임한 직후 처음 행해지는 대규모 정기인사다. 강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새 인사방침에 따라,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임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민유성 전임 회장 때 임명된 최 사장으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강 회장의 추천으로 영입된 김영석 KDB생명 고문 등 경영진들과의 갈등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산은이 KDB생명의 전신인 금호생명을 지나치게 비싸게 인수했다는 감사원의 지적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산은은 이에 대해 '루머'일 뿐이라며 "건강상의 이유 외에 다른 것은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오히려 산은의 인사원칙에 대한 금융권의 의혹만을 키울 뿐이다. 가뜩이나 강 회장 취임 이후 각종 루머에 시달리는 산은이다. 적자를 흑자로 바꿔놓은 최 사장에게 과연 '신상필벌' 외에 어떤 인사원칙이 적용됐을지, 금융권에서는 여전히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이지은 기자 leez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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