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손은정 기자] "자신이 없었다면 도전하지도 않았다."
내년에는 국내 무대에서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됐다. 한국선수로는 유일하게 나비스코챔피언십을 제패한 박지은(32)이다. 박세리(34), 김미현(34) 등과 함께 처음 미국 무대를 개척했던 '한국낭자군 1세대'다.
지난달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시드전을 거쳐 2012시드를 확보했다. 박지은이 돌연 국내 무대를 택한 까닭이 궁금했다. 동생 박영식(30) 씨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 "나는 한국인이다"= 박지은의 미국 이름은 그레이스 박이다. 할리우드의 유명한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팬이었던 아버지가 지었다. 국내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뒤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아마추어 55승이라는 대기록과 함께 전미 아마추어랭킹 1위를 달려 일찌감치 '차세대 골프여제'로 주목받았던 선수다.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졸업한 애니조나주립대학에서 엘리트과정을 차곡차곡 밟았다.
프로 데뷔도 화려했다. 1999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2부 투어 격인 퓨처스투어 10개 대회에서 무려 5승을 거두며 상금왕에 올라 이듬해 정규 투어로 진출했다. 2004년까지 메이저대회 나비스코챔피언십을 포함해 통산 6승, 순탄하게 '월드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박지은은 그러나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 적응이 필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도 한국인이고, 미국은 타지에 불과하다"고 했다.
"한국과 달리 모든 수업을 받은 뒤 늦은 오후에나 연습을 시작할 수 있어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게 무엇보다 어렵다"는 박지은은 "대학에서도 평점 3.0점을 이상을 받지 못하면 보충수업을 받아야 하는 시스템이라 골프에 집중하고 싶어도 항상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면서 "이 때문에 어느 순간에는 골프가 질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 부상에 시달리다= 2005년 슬럼프가 왔다. 연습을 다소 소홀히 해도 '톱 10'을 유지했던 천재성이 사라지면서 '컷 오프'도 늘었다. 고관절과 허리 부상 때문이었다. 평소 생활하는 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지만 스윙에서는 엄청난 부작용이 생겼다. 박지은은 "아파서 백스윙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고, 온갖 치료법을 찾았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투어를 강행했지만 결과는 더 나빠졌다. 통증을 참다못해 2009년에는 결국 고관절 수술을, 지난해에는 허리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회복은 빨랐다. "가능하면 수술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진즉에 받을 걸 그랬다"며 후회다. 최근 몇 년 만에 올해는 하반기 전 경기를 다 소화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아졌다. 그래서 선택한 게 국내 투어다.
"다들 국내 복귀라고 표현하는데 '복귀'가 아니라 처음"이라며 웃음을 터뜨린 박지은은 "미국에서만 투어생활을 해왔고, 지금은 한국에서 선수 생활의 마무리를, 그것도 아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라며 "이번에 시드전을 치르면서 어린 선수들의 단순함과 패기가 부럽기도 했지만 내년에는 일단 그들에게 없는 다양한 경험을 앞세워 최고의 성적을 올리겠다"고 자신했다.
▲ 내년 목표는 '상금퀸'= 내년 시즌 전망에 대해 묻자 주저 없이 "무조건 우승, 상금퀸"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LPGA투어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1월 초 미국으로 동계훈련을 떠나 3월에는 LPGA투어에 출전해 실전 샷 감각까지 조율하는 '두 마리 토끼사냥'을 노린다. 4월 경 KLPGA투어 개막에 맞춰 다시 입국한다는 스케줄이다. 여름철 비수기에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몇 개의 대회를 소화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그야말로 1년이 시합으로 꽉 찬 일정이다. 문제는 체력이다. 이를 위해 올 겨울 지옥의 체력훈련을 준비했다. 박지은은 "시드전 이후 2주간 휴식을 취한 뒤 이미 몸만들기에 돌입했다"며 "그 어느 시즌 보다 공들여 2012년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을 기대해달라"고 주문했다. 박지은의 새로운 도전을 책임질 무기는 핑이다. 드라이버와 아이언, 웨지, 퍼터까지 다 같은 브랜드다.
손은정 기자 ejson@
사진=양지웅 기자 yangd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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