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외화유동성을 확충하기 위해 중동의 풍부한 '오일머니'를 유치하겠다던 정부의 계획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자금 조달의 핵심이 되는 수쿠크법 논의는 중단됐으며, 시중은행을 통해 조달된 중동계 자금도 1년 이하의 단기차입금이 대부분이다. 수출입은행만이 중장기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28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들어 시중은행이 차입 형태로 조달한 중동계 자금은 약 9억달러(1조원) 규모로, 채권발행을 통한 중장기 차입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은이 최근 들어 2억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리얄화 채권을 발행했지만 이는 당국의 태스크포스(TF)와는 별도로 자체 추진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8월 기획재정부와 한국투자공사(KIC)등과 손잡고 중동자금 유치 TF를 마련, 외화유동성 조달처 다변화에 나섰다. 자금 조달 창구가 미국과 유럽에 치우쳐 있어 향후 위기가 닥쳐오면 자금줄이 마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 역시 주요 금융지주사 회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외화차입 루트 다변화를 위해 중동계 자금 유치가 필요함을 강조했고, 4대 지주 회장들도 정부의 방침에 동조해 중동자금 유치에 나설 뜻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 중동계 자금 유치를 독려했음에도 불구, 1년 이하의 단기자금만이 조달됐다.
중장기 자금 조달의 핵심인 '수쿠크법'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수쿠크법은 수쿠크 채권의 양도세ㆍ등록세 등을 면제해 주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어 일부 종교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금융위마저 법 추진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자 "수쿠크법은 (중동자금 유치의)핵심이 아니다"라며 발을 빼고 있는 상태다.
수쿠크법이 없으면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일반 채권시장에서 직접 채권 발행에 나서야 하는데, 싱가폴 국부펀드 '테마섹'도 고배를 마셨을 정도로 기준이 엄격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중동계 자금들이 대부분 유럽에 투자돼 있다는 점도 유치를 어렵게 하는 부분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중동계 자금 대부분이 현재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에 묶여 있다"며 "우리에게 투자할 여유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단기간 내 실적을 내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중동 금융기관들과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중동 국가들과 교류는 계속 하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면서도 "소통이 되려면 신뢰를 쌓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만큼, 좀더 장기적으로 보고 계속적으로 협력관계를 돈독히 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leez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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