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공순 기자]
1. 하버드 대학의 일부 신입생들이 지난 22일 경제학개론 수업중에 집단 퇴장했다. 이들은 강의 내용이 “미국을 파국으로 몰아넣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찬양하고 있다”면서 수업을 거부했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세계 대학 서열 100위안에 들어있지 않으므로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
2. 지난 주말 발표된 뉴욕연방준비은행의 한 보고서는 2001년 이후의 경제 보고서들이 왜 성장률과 실업률 예측에 실패했는가를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주택 가격이 그처럼 하락할 줄 아무도 몰랐다”며 솔직히 기존 예측 모델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했다.
그런데 정말 아무도 몰랐을까? 2005년 이후 미국의 신용버블을 경고한 경제학자의 숫자는 적지 않다. 2007년이면 경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조차 미국 경제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2008년 당시 미국 재무부장관을 지낸 행크 ‘바주카’ 폴슨의 회고록에 따르면 이미 2006년 여름에 골드만삭스는 주택시장 버블 위기에 대한 내부 대책팀을 꾸렸다. 더 직접적인 증거는 이미 2005년도에 G7의 씽크탱크인 FSB(금융안정위원회)가 신용거품이 터질 때를 대비하여 ‘자본금을 더 충당하거나’, 혹은 ‘도저히 파산시킬 수 없을 만큼 더 많은 버블을 만들어내도록’ 기본 지침을 작성했다. 이것이 이른바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기본 개념이었다.
반면에 천연덕스럽게 미 연준의 벤 버냉키 총재는 2007년 초에도 ‘서브프라임 문제는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보와 거짓말쟁이 중에서 버냉키는 어떤 것을 선택할까?
주변부로가면 좀 더 심각하다. 한국에서는 2008년 초까지도 아무런 위기의식이 없었다. 적어도 주류 학계와 관료들 사이에서는. 2008년 9월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하고 난 뒤에도 산업은행을 민영화해서 파산한 리만을 인수하자느니, 국부펀드(KIC)로 싼 값에 미국 자산을 사들이자느니 변방의 북소리는 시끄러웠다.
리만의 아시아법인을 인수한 노무라 증권이 수십억 달러의 누적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재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지난 주 보도가 나왔다. 지난 주말 현재 노무라증권의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은 이탈리아 국채급이다.
KIC가 투자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주가가 반토막이 난 것을 어떻게 정당화할지 궁금하다. 참고로 유로존 위기가 폭발한다면, 가장 먼저 파산할 미국 은행은 BOA로 꼽힌다.
그런 주장을 했던 인물들이 아직도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증표이기도 하다. 거짓말과 뻔뻔스러움은 이 시대의 성공의 비결인 것이다. 적절하게도 대중들은 관대하다. 대중들은 그들을 부러워하며, 추종하고 심지어는 존경하기까지 한다. 몇 년전에 주한 미군사령관이 한국인들을 ‘쥐떼’(rats)라고 불러서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다. 그의 유일한 잘못은 지나치게 솔직한 것뿐이었는지도 모른다.
3.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지난 22일 발표한 새로운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의 내용은 자못 흥미롭다. 마이너 언론들이 'Black Sky Scenario'(墨天의 章)이라는 명명한 이번 테스트는 눈 앞이 캄캄할 만큼 설정 조건이 극심하다.
가장 최악으로 상정된 조건은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real GDP)가 올해 4/4분기에 -4.84%, 2012년 1/4분기는 자그마치 -7.98%로 설정되어 있다. 다소 후행적인 실업률은 2012년 1/4분기에 10.58%로 10%대를 돌파하고 2013년 2/4분기가 가장 나빠 13.05%까지 치솟은 뒤 2013년 3/4분기부터 조금씩 회복하는 것을 시나리오로 하고 있다.
미국의 은행들은 이 조건을 견딜 수 있을만큼 자본충당계획을 세우고, 비상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두고 대부분의 언론과 분석가들은 연준이 유로화의 붕괴를 대비하여 시나리오를 설정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조건은 지난 2008년 버블 붕괴 뒤의 조건보다도 더 가혹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조건들은 유럽연합 국가들 보다도 미국의 경기 침체가 더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묵천의 장'이 설정하고 있는 유럽연합 전체의 GDP 증감률은 올해 4/4 분기 -1.03%, 미국이 8%가까이 하락하는 2012년 1/4분기에도 고작 -3.49%에 머무른다.
물론 회복도 훨씬 늦어 2012년 3/4분기에 -6.91%로 최악을 경험한 뒤 2012년 4/4 분기에 -4.92%, 2013년 2/4 분기에 +0.35%로 설정되어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의 경기 회복은 훨씬 빨라서 2012년 4/4 분기에 0% 성장, 그리고 2013년 1/4분기부터는 성장이 본격화되어 2013년 전체로는 약 2.3% 정도의 성장률을 가정하고 있다.
유로화가 붕괴하면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것은 당연히 유로존 17개 국가이며,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유럽연합 27개국이다. 그런데 유럽에 대한 위험 노출이 2천억 달러(지난 10월 연준 발표)에 불과하다는 미국이 훨씬 더 빨리, 더 깊게 충격을 받는다?
물론 유로화가 붕괴하면 엄청난 신용 공황이 뒤따르고 국제 교역이 급속하게 감소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더 큰 타격을 받는다는 설정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경제'가 말하지 않은 다른 요인들을 추가한다면 보다 설명이 쉬울 수 있다. 만일 유로화 붕괴와 대규모 국지전이 거의 동시에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마지막으로 진짜 돈 얘기.
연준의 ‘묵천의 장’에는 다우존스 산업지수 시나리오도 있다. 올해 4/4분기는 다우 9504, 2012년 1/4 분기는 7,576, 2/4분기 7,089까지 떨어진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2012년 3/4분기는 5,705, 4/4분기가 바닥으로 5,668을 가정한다. 정확하게 지난 주말의 다우지수의 절반이다. 2013년부터 약간씩 반등해서 그해 말에는 7,600선까지 설정하고 있다.
미국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2012년 3/4분기에 1.67%로 최저점을 기록하고 (현재 1.9% 수준), 2013년 말에도 2%대를 넘지 못할 것으로 되어 있다.
‘묵천의 장’에서 가정하고 있는 미국 다우지수를 기준으로 한국의 kospi 지수와 환율을 환산해 본다면 흥미로울 것이다. fasten your seat belt.
이공순 기자 cpe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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