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아테네, 로마, 다음은 파리?’
유로존 부채위기가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에 이어 이탈리아까지 위협하는 가운데 투자시장에서는 독일과 함께 유로존 양대 중심축인 프랑스까지 위기가 전이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BNP파리바·크레디아그리콜·소시에테제네랄 등 프랑스 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손꼽히는 대형은행들인데다 미국 대형은행들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에, 유로존 재정위기국들의 국채 부실화가 프랑스 은행권까지 미칠 경우 세계 금융시스템이 받을 타격은 상상을 넘어설 것이라고 14일 뉴욕타임즈(NYT)가 보도했다.
지난주 이탈리아 재정위기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이탈리아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7%대 중반까지 치솟았고, 금융시장의 심리적 지표인 프랑스-독일 국채 10년물 간 수익률 격차도 1.6% 이상으로 확대됐다. 모두 유로존이 출범한 1999년 이래 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여기에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실수로 프랑스 신용등급을 강등한다는 내용을 고객 이메일로 전송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져 투자자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S&P는 부랴부랴 기술적 오류였다면서 해명에 나섰지만 프랑스 정부와 유럽연합(EU) 등은 가뜩이나 민감한 시기에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규탄하는 한편 사건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프랑스 은행들은 이탈리아 등의 국채 외에도 프랑스 국채를 상당량 보유하고 있다. 국채가치 하락과 은행권 부실화, 정부 재정안정성까지 어느 하나가 먼저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서로 꼬리가 물려 있는 복잡한 상황이다. 이탈리아의 재정위기 전이 가능성은 곧바로 프랑스의 재정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이 시장의 시각이며, 만약 이탈리아 문제가 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당시와 같은 국제 신용경색으로 번지면 단기자금조달 의존 비중이 큰 프랑스 은행들은 매우 취약해지게 된다.
한스 미켈슨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 투자전략가는 “이탈리아 문제는 곧 프랑스의 문제”라면서 “유로존 위기의 핵을 건드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일단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사임하고 훨씬 안정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마리오 몬티 전 EU집행위원이 후임으로 지명되면서 이탈리아 위기는 진정 국면에 접어든 모양새다. 하지만 GDP대비 120%인 1조9000억유로 규모의 막대한 정부부채를 줄이고 혼란에 빠진 정국을 수습하며 만성적인 저성장을 극복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가 놓여 있다.
프랑스 정부와 은행권은 이탈리아 위기가 완화되면서 프랑스에 여파가 미치지 않을 것이며, 프랑스 은행들이 최근 몇 개월 동안 이탈리아 국채 익스포저(노출 위험도)를 크게 줄였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권 은행들은 전통적으로 미국 머니마켓펀드(MMF)시장을 유용한 ‘자금줄’로 의존해 왔다. 예금자산과 보유자산 간 격차를 메우기 위해 단기자금인 MMF에서 달러화 자산을 조달해 왔지만 유로존 위기가 심화되면서 미국 MMF들이 유럽권 은행에 대한 대출을 크게 줄이고 있어 유동성 압박이 여전한 상황이다. 프랑스 은행들이 MMF 의존도를 낮추고 있지만 여전히 익스포저가 크다. 10월 말 기준으로 미국 MMF들이 보유한 프랑스 국채는 840억 달러에 이른다.
국제결제은행(BIS)은 미국 은행권이 직접 보유한 프랑스 국채는 많지 않지만 전체 익스포저는 여전히 광범위하다고 지적했다. 미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미국 은행권의 독일·프랑스 은행 익스포저는 1조2000억달러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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