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조선5백년 인물풍속화展' 마지막 날, 350m 관람객들 장사진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30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성북동 성북파출소 밑으로 왼쪽으로 꺾어지는 성북초등학교 뒤 담장까지 줄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진풍경이다.
간송미술관의 '조선 5백년 인물풍속화전'을 보기위해 기다리고 있는 관람객들이 350m의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것. 오랫동안 기다려야해 동행자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군것질을 하거나, 책을 읽는 등 사람들은 기다리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매스컴에서 이미 보도가 된 까닭인지 전시 마지막 날인 오늘. 이처럼 관람객들이 대거 몰렸다. 주변으로는 솜사탕과 호박엿, 커피를 파는 상인들도 꽤나 보인다.
◆미술관서도 뜻밖..문화향유 욕구 높아진 까닭?= 수많은 관람객들의 방문에 간송미술관 관계자들도 뜻밖이라는 눈치다.
간송미술관 소속 오세현 연구원은 "언제부터 이렇게 우리 그림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놀랍다. 지난 5월 사군자 전시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우리 미술관에서도 앞으로 어떻게 관람객들의 편의를 돕고 더 많은 프로그램을 개발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
간송미술관에서는 무료로 일 년에 딱 두 번, 5월과 10월 2주 동안만 전시를 갖는다. 오 연구원에 따르면 이번 전시를 관람한 관람객 수는 주중동안 5000명, 주말에는 1만명 정도가 다녀갔다. 이전까지의 전시보다 2~3배가 높은 수치다.
아이들 셋과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주부 이 모씨는 "사실 지난주에도 오랫동안 기다려서 보긴 했지만 성인들도 많아서인지 키 작은 아이들이 제대로 관람을 못한 것 같아 다시 찾은 것"이라며 "아침 9시 반에 왔는데 아직도 2시간 동안이나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1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에서 친구와 함께 전시를 보러온 30대 김 모씨는 "10시에 도착했는데 1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며 "평소 역사나 미술에 관심이 많아서 한번 찾아오게 됐다"고 밝혔다.
문화예술의 향유 욕구가 더 확산된 까닭일까? 아니면 성북동 조그만 미술관이 일 년에 두 번 밖에 전시를 열지 않은 희소성 때문일까? 일단 한국 고미술에 대한 관심이 예전 보다 높아지게 됐다는 건 이번 전시의 인기를 통해서도 확인된 셈이다.
◆조선왕조 5백년 역사, 인물화로 풀어낸 전시= 이번 전시는 500년 동안 조선왕조가 배출한 52명의 화가들이 그려낸 인물 풍속화 100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조선시대 안견에서 후기 이당 김은호까지, 그 안에는 김홍도, 신윤복, 장승업, 강세황, 정선 등 조선시대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많은 화가들의 작품도 구경해 볼 수 있다.
관람하기 위해서는 미술관 초입부터 2층 전시장 역시 계속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1층에서 맨 처음 마주한 그림은 이한철이 그린 고종의 생부 흥선대원군인 석파 이하응의 환갑 때 초상화다.
이어 장승업의 삼인문년(三人問年_ 세 사람이 나이를 묻다), 이명국의 어초문답(漁樵問答)이란 그림이 보인다. '어초문답'이란 어부와 나무꾼을 그린 그림이다. 전시장에서는 어초문답이란 제목인 작품들이 두 점 더 있는데 홍득구와 정선이 그려냈다. 맨발에 생선과 낚싯대를 쥐고 있는 어부와 짚신을 신고 나뭇가지를 든 나무꾼이 뭔가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는 듯 정다운 표정이다.
1층에서는 그 유명한 신윤복의 '미인도'도 만날 수 있다. 여인 초상화의 으뜸이라 여겨지는 이 그림은 아담하고 고운 기생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미인은 가체를 사용한 듯 탐스런 얹은머리에 기장이 극도로 짧고 소매통이 팔뚝에 붙을 만큼 좁아진 저고리를 입고 있다. 무지개 치마라고 했지만 빛바랜 비단 때문에 이젠 옥색 치마를 하고 있다.
1층이 주로 걸개그림 같은 위에서 아래로 거는 그림들이 많다면 2층에서는 A4 크기만한 작은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책만한 크기의 그림과 그 옆에 쓰인 시 그리고 시를 구성하는 글씨가 우리 그림의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다. '시·서·화'가 살아있다.
작품 제목만 봐도 조선의 그림이 갖는 주제가 얼마나 풍류와 낭만을 주요하게 담았는지 알 수 있다. 김득신의 ‘어옹취수(漁翁醉睡_어부가 취해 잠들다)', 김홍도의 ‘마상청앵(馬上聽鶯_말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는다), 강세황의 '노인관수(老人觀水_노인이 물을 바라보다)', 김후신 '통음대쾌(痛飮大快_흠뻑 마셔 크게 유쾌하다)'.
이곳에 전시된 많은 그림들이 달빛과 물, 나무, 산과 같은 자연을 감상하는 선비들이나 말과 술을 소재로 한 것들이 많았다. 여기에 시간이란 요소가 더해져 빛바랜 바탕위에 옅은 색들이 되레 옛 사람의 정취를 듬뿍 전하고 있다.
지난 1966년 설립된 간송미술관은 한국 전통미술품을 주로 소장한 국내 최초의 민간 박물관이다. 문화재 수집가로 널리 알려진 간송 전형필 선생이 33세 때 세운 것이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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