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제약업계는 시류(時流)를 잘 읽지 못하는 듯하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정부와의 논리싸움 중간에 터진 '자살골'이 될 것 같다.
최근 부광약품 본사로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사장실과 약가인하 담당부서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들에게 금품을 건네 자사의 의약품 가격을 높게 책정하도록 유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업계가 의ㆍ약사에게만 뇌물을 준 게 아니라 정부마저 돈으로 매수해왔다는 충격적 혐의다.
며칠 후엔 한국오츠카제약이 지난해 3, 4월 자사 의약품에 대한 설문조사 사례비 명목으로 의사 850여명에게 총 13억원의 리베이트를 준 혐의로 검찰에 적발됐다. 제약사가 직접 리베이트를 건네지 않고 추적을 피하기 위해 광고대행사 및 타 계열사 등 제 3자를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지난 8월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특허가 만료된 신약과 복제약 가격을 현행 (신약가격의) 68~80%에서 53.55%로 일괄 인하하는 약가개편안을 발표했다. 약값의 거품을 걷어내 국민 부담을 줄여주고 건강보험의 재정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의사에게 주는 리베이트를 줄여 연구개발(R&D)에 투자하라는 명분도 있다.
업계는 시장을 무시한 가혹한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4일 만난 상위제약사 임원도 "그동안 제약업계가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복제약을 팔아 호황을 누려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약가인하는 '썩은 살'뿐만 아니라 멀쩡한 살까지 도려내는 정책"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업계는 지난 11~12일 복지부와 가진 워크숍에서 오는 2014년 이후 단계적 시행과 인하폭 조정을 요청한 상태다.
양 쪽이 팽팽히 대립하는 가운데 승기는 '명분'을 찾는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정부의 명분은 리베이트다. 대다수 제약사들이 몸조심하며 조용히 지내는 틈을 타, 한 몫 잡으려는 '용감한 리베이트 제약사'가 활기를 친다는 소문도 있다. 실제 몇몇 제약사는 최근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
업계가 구태를 벗지 못하는 것은 습관의 무서움 때문일 테다. 성장통으로 봐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대가가 너무 크다. 약가인하를 재고해달라는 토로가 공허하게 들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아볼 때다.
박혜정 기자 par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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