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공순 기자] 유럽의 부채 위기가 유럽계 은행들의 뱅크런(예금 인출)으로 이어지고,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이 전격 하향되면서 그리스에서 출발한 충격파가 본격적으로 유럽 중심부로 번져가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금융권은 충격파가 미국에까지 번질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그리스 파탄과 유로존 탈퇴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그러나 유로존 은행들의 준비가 되지 않아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 은행 뱅크런 조짐=독일 지멘스가 프랑스 은행에 예치해뒀던 예금을 빼 유럽중앙은행(ECB)으로 옮긴 것으로 20일(현지 시간) 확인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날 유럽 최대 엔지니어링 기업 지멘스가 2주 전 프랑스 은행 예금 5억 유로 이상을 인출해 ECB로 옮겼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이탈리아계 은행에서 뱅크런이 있었다는 풍문은 지난 8월 초부터 몇차례 시장에 나돌았으나, 프랑스계 은행에서 기관투자가가 대규모 예금인출을 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CB는 지멘스 등 일부 대기업들에 직접 예금을 예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지멘스는 1주일짜리 단기 창구를 통해 40억~60억유로를 예치했다고 FT는 전했다. 지멘스가 예금을 인출한 대상 은행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지멘스의 자금인출은 은행에 대한 불신에 따른 자금의 인출 즉 뱅크런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프랑스 은행에 그치지 않는다. 독일 은행들도 그리스 국채에 대한 노출로 손실을 입고 위험 가시권에 들어갔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짜이퉁'지는 19일 독일의 경제연구기관인 DIW의 연구결과를 인용, 독일 은행들이 앞으로 약 1700억 달러의 추가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이달초 국제통화기금(IMF)은 유럽계 은행들의 추가 자본 확충에 약 2000억 달러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으나, 독일의 사례에 비추어보면 이 규모는 훨씬 커지고 그만큼 부채위기 극복 기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벨기에의 레인더스 재무장관은 프랑스 일간 '라 트리뷴'지 인터뷰에서 유로존이 국가 부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S&P 이탈리아 신용등급 강등으로 충격 더해져=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20일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을 전격 하향0한 것은 악재에 악재를 더했다.정치권이 혼란한데다 재정목표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고, 경제성장률 전망이 하락한 게 이유였다.
이탈리아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7%로 하향했고, 내년에는 1%나 그 이하일 가능성으로 보고 있다. 성장률이 낮아진다면 소득부진에 따른 세수증대가 어려워 재정적자 축소 가능성도 그만큼 낮아지며, 이는 부채 위기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탈리아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은 이탈리아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유럽계 은행들의 자본 건전성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유럽계 은행들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게 확실하다.
이미 지난주 초 무디스는 프랑스계 은행인 소시에떼 제네랄과 크레디트 아그리꼴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바 있다.
◆그리스 위기 해결은 답보상태=유럽의 부채위기는 심화되고 있지만, 정작 진원지인 그리스 위기 해결은 답보 상태에 빠져있다.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가 공동 결정키로 했던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 지원은 19일 긴급 전화회동에 이어, 다음날로 연기됐다.
그리스 문제해결이 지연되면서 유럽의 부채 위기는 점차 중심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뉴욕대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이날 FT 기고문에서 "그리스의 파산이 지연될수록 유로존의 위기가 심화된다"며 "조속히 그리스가 파산을 선언하고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로존 국가들이 그리스에 대해 '통제된' 파산 준비를 아직 마치지 못하고 있어 이 방안은 실현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상당기간 혼란이 불가피하다.
◆미국도 노심초사=미국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미국계 은행의 노출액이 적지 않아 위기가 계속되면 충격이 미국으로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은행(Fed)은 이달 초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 3개국에 대한 미국계 은행들의 위험 노출액이 약 2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탈리아 및 프랑스에 대한 부분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 유럽의 부채 위기가 중심부로 확대되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질 게 분명하다.
또 이는 단지 유럽의 문제만이 아니라, 유럽을 제1의 수출시장으로 삼고 있는 중국으로 번질 수 있다. 졸릭 총재가 19일 신흥시장의 위기를 경고한 것도 바로 이같은 맥락에서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의 이코노미스트인 미셸 마이어는 "유럽계 은행에 대한 부외(off-balance sheet) 위험 노출을 감안한다면, 미국 은행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면서 "유럽의 위기가 심화되면 그 충격은 미국 경제를 불황으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카제노베캐피탈의 전략가인 로빈 그리피스는 "현재 국채 가격 및 경제 지표들은 미국이 불황이 아닌 '대공황'에 접어 들었음을 나타낸다"고 주장했다.이공순 기자 @
이공순 기자 cpe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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