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8ㆍ24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개표 성립요건(투표율 33.3% 이상)을 채우지 못해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무산됐다. 서울 시민들의 '보편적 복지'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는 결과다. 오세훈 시장의 선택적 무상급식 제안은 동력을 잃고 서울시 교육청과 민주당 등이 추진한 전면 무상급식은 탄력을 받게 됐다.
개표가 무산됐음에도 한나라당은 야당의 투표거부 운동으로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사실상의 승리'라 주장했다. 낮은 투표율도 민심이다. 결과에 승복하고 시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바른 도리다. 오 시장 역시 "시장직을 걸겠다"는 자신의 말에 책임져야 한다.
투표거부 운동을 벌였던 민주당은 '서울 시민의 승리'라 환영했다. '복지는 시대흐름'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자만해서는 안 된다. 25.7%에 달한 투표율은 역설적으로 복지 포퓰리즘을 걱정하는 시민도 적지 않다는 의미다.
주민투표의 당초 취지는 무상급식의 범위를 시민들이 선택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 시장이 시장직을 주민투표와 연계하고 여야 정치권이 적극 개입하면서 정치투표로 변질됐다. 그러다 보니 고질인 이념과 계층 간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갈등을 키우고 상처만 남긴 주민투표가 됐다. 후유증이 걱정이다. 어린 학생들의 급식 문제조차 대화로 풀지 못하는 정치권의 무능이 이런 사태를 불렀다. 서울 시정의 책임자인 오 시장의 책임이 크다. 시장직을 연계한 것도 그렇다. 여야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과 편 가르기를 유도한 야당의 책임도 있다. 정치권은 갈등을 키운 데 대해 반성하고 후유증 치유에 노력해야 한다.
증대되는 복지욕구와 재정 건전성의 균형점을 어떻게 맞춰 가느냐가 이제부터의 과제다. 이번 투표 결과 보수 쪽의 '포퓰리즘 복지' 주장은 입지가 약해졌다. 복지욕구는 증대될 게 분명하다. 문제는 이에 편승한 정치적 포퓰리즘이다. 내년 총선과 대통령 선거에서 여야가 경쟁적으로 선심성 복지정책을 쏟아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복지는 이제 시대적 과제다. 문제는 재원이다. 재정 건전성을 지키면서 복지를 어떻게 어디까지 넓힐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주민투표를 새로운 복지, 조화로운 복지를 찾는 계기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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