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철 하나은행 리테일사업부 팀장 인터뷰
"첫눈의 설렘과 같은 은행 상품개발"
연 100개 아이디어 중 6개 살아남아
[아시아경제 박민규 기자] 하루에도 몇개씩 쏟아져 나오는 금융 신상품, 그 뒤에는 상품개발 담당자들의 고충과 애환이 서려 있다.
금융권을 전쟁터로 비유하면 은행의 상품개발 부서는 신무기를 만드는 곳이다. 전략도 중요하지만 뛰어난 무기가 뒷받침돼야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녹슨 칼로 총포에 맞서면 백전백패는 불 보듯 뻔하다. 때로는 무기에 따라 전략이 바뀌기도 한다.
최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은행권의 상품개발부서를 찾았다. 경쟁에 쫓겨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신성철(사진) 하나은행 리테일사업부 팀장은 의외로 여유만만했다. 스트레스에 찌든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창작의 기쁨과 고통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그는 은행 상품개발 업무를 한마디로 요약정리했다. 6년간 해당 업무를 담당하면서 얻은 철학이리라. 일을 즐기는 듯 보였는데 창작의 고통을 고스란히 스트레스로 몸에 축적하는 대신 혁신을 위한 도약의 과정으로 여길 때 가능한 내공으로 보였다. 그는 그래서 "상품개발부서는 재밌는 곳"이라고 말한다.
혁신을 지향하는 하나은행의 조직문화도 '재미'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 하나은행에는 딱히 정해놓은 사훈이나 사가가 없다. 혁신 자체가 하나은행의 조직문화인 셈이다.
은행에서 혁신을 이끄는 건 다름 아닌 빼어난 상품이다. 이를 위해 김정태 행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끊임없이 신상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낸다. 상품개발은 담당자들만의 몫이 아닌 것이다.
특히 하나은행의 상품개발 업무는 아이디어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부서에 얽매이지 않는다. 개발담당 직원이 아니더라도 해당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상품개발에 참여해 일종의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은행 임직원뿐 아니라 때때로 외부 인사들도 참여한다. 부동산 관련 상품이라면 해당 분야의 대학교수나 공인중개사 등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거치는 것이다.
하나은행 내부에서 들어오는 상품개발 관련 아이디어만 1년에 100개가 넘는다. 그중 취사선택해 실제 상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극소수다. 하나은행의 경우 통상 두달에 하나 정도 신상품이 나오니 100개의 아이디어 중 6개만이 살아남는 셈이다.
임직원이 낸 아이디어가 실제 상품개발로 이어질 경우 해당 직원에게는 특별상여금도 주어진다. 하나은행은 매년 직원 대상 상품 공모전을 열고 선정된 직원들에게는 해외연수 기회를 주고 포상을 한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내부 상품 공모를 하고는 있지만 하나은행이 가장 적극적이라고 신 팀장은 설명했다. 그는 "행장님을 비롯한 임원의 열의가 강하다"며 "임원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기 때문에 담당자들이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압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에 열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좋은 상품도 중요하지만 이를 파는 사람들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약도 잘못 쓰면 해가 될 수 있듯이 말이다. 신 팀장은 애초에 판매자가 팔기 쉬운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의다. 이를 위해 그는 영업현장의 직원들과 수시로 소통한다. 경쟁 은행의 상품개발 담당자들과도 교류를 갖는다. 기본적으로는 경쟁자들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함께 발전해 나가야 하는 동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밤새 눈 내린 다음날 아침 하얀 눈밭에 내 발자국을 남기는 마음으로 일하고 싶다"는 신 팀장. 피도 눈물도 없다는 돈의 세계에서도 역시 창작의 발단은 설렘이었다.
박민규 기자 yu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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