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기업인이 진정한 기부를 하겠다면 개인재산으로만 전액을 내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16일 범 현대가가 5000억원을 출연해 사회복지법인 '나눔아산재단' 설립 발표후 한 독자가 전화통화에서 이같이 질문했습니다.
주인공은 관정 이중환 교육재단에서 고문을 맡고 계신 이청수 고려대학교 교수였습니다. 그는 "회사 돈으로 재단을 운용하면 기업이 이익창출에 노력을 덜 기울이게 돼 회사 운영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또한 기업가가 회사 돈으로 기부를 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그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관정 이중환 교육재단은 지난 1958년 삼영화학공업으로 시작해 1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삼영그룹으로 키워낸 창업주 관정 이중환 이사장이 2002년 4월 17일 사재 3000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국내최대 장학재단입니다. 이 이사장은 매년 자신의 돈으로만 재단에 출연해 누적 규모가 6500억원을 넘어섰는데, 이는 그가 평생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재산의 95%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출연금에서 매년 받는 이자 150억원으로 연간 400여명의 국내외 대학(원) 재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국내외 교육기관에 보조금도 지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이 재단을 벤치마킹해 이건희 장학재단(현 삼성꿈장학재단)을 설립했다고 하며, 범 현대가가 출범시키는 나눔아산재단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듯 큰 규모의 재단을 키워낼 수 있었던 배경은 이 이사장의 인재 양성에 대한 의지 덕분이라고 합니다. '자장면 회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검소한 그는 "우리나라는 믿을 거라곤 인재뿐"이라며 재단 일이라면 주머니에 있는 동전까지 털어낼 정도라고 합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장학생이 보내온 감사의 편지를 읽을 때라고 합니다.
이 교수가 재단 이야기를 들려준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미국의 록펠러재단, 카네기재단 등을 롤 모델로 이야기하는데 한국에도 이렇게 훌륭한 사회복지재단이 있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는 겁니다.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기부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진정으로 기업인이 제대로 된 기부를 하려면 개인재산을 내야하며, 그 의도 또한 순수해야 한다"며 "이런 정성이 보여야만 국민들도 마음을 열어 기업인들을 포용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업이 좋은 일을 하겠다는 데에도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현실에서 관정 이중환 교육재단의 이야기가 신선하게 들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채명석 기자 oricm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