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영규 기자]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지난 2005년이후 6년째 국회에 계류 중인 '북한 인권법'통과를 재차 촉구하고 나섰다. 상대는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 대표이고, 시점은 무상급식을 놓고 여야가 복지 포퓰리즘에 빠져있는 가운데서 나와 주목된다.
김 지사는 16일 한나라당 홈페이지 자유발언대에 올린 '북한 인권법과 황우여 대표에 거는 기대'라는 글에서 "북한동포를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북한의 인권문제는 지금까지 수수방관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김 지사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6년째 묶여있는 북한인권법이 미국에서는 어떻게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됐는가"라며 "통일이 된 뒤 대한민국이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해 무엇을 했냐고 물으면 무슨 대답을 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의정활동을 이끌고 있는 황우여 원내 대표는 '북한자유이주민의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의 의장으로서 북한 인권을 위해 늘 앞장 서 온 분이기에 기대가 더욱 크다"며 각별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북한인권법은 지난 2005년 제정후, 2008년 발의됐지만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민주당의 반대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일각에서는 김 지사의 이번 기고문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6년째 해묵은 북한 인권법을 들고 나온 데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국내 정치권이 무상급식 등 복지 포퓰리즘에 사로잡혀 사활을 걸고 싸우는데 따른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일각에서는 그 어떤 현안보다 북한 인권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김 지사가 그간 지지부진한 북한인권법에 대해 국회 차원에서 조속히 처리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같은 글을 쓴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음은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한나라당 발언대에 기고한 글>
북한 인권법과 황우여 대표에 거는 기대
김 문 수 경기도지사
2004년 10월18일 미국 상하원 양원이 만장일치로 북한 인권법을 통과시켰을 때, 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부끄러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뜻을 함께 하는 동료 의원들과 2005년 8월11일, 17대 국회의원인 나는 동료의원 28명의 서명을 받아 북한인권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 국가는 대한민국 국민인 북한주민이 헌법상 기본적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정부는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탈북자 등 남·북간 인권현안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 북한 인권대사, 국군포로와 납북자문제 해결을 위한 기획단, 북한인권기록보존소 등을 둔다.
이것이 당시 내가 발의한 북한 인권법안의 핵심 내용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상정조차 되지 못한 채 회기 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
북한이 대규모 식량난을 겪고, 굶주린 주민들의 탈북행렬이 시작된 1990년대 중반 이후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 문제는 시급한 이슈로 부각됐다. EU 국가들의 주도로 UN은 2005년부터 매년 총회에서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에 이어 일본도 2006년에 북한 인권법을 독자 제정했다.
그러나 정작 북한동포를 국민으로 규정하고, 탈북자들에게 별도의 국적 취득 과정 없이 입국과 동시에 국적을 부여하고 집과 정착금까지 주고 있는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수수방관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정부는 유엔인권위원회 대북인권결의안 표결에 불참했고, 2004년과 2005년에는 기권을 했다. 아이들의 일기장 검사도 인권침해라며 못하게 하던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민의 세금을 들여 연구용역을 맡긴 뒤, 북한인권이 참혹한 수준이라는 보고서가 나오자 슬그머니 숨겨버렸다. 당시 국회에서는 탈북자 증언 한마디 듣는 것, 다른 나라 방송에서 모두 보도된 북한의 공개처형 동영상 한번 트는 것조차 언성을 높이며 싸워야 가능할까 말까한 형편이었다. 2004년 9월 2일 열린 우리당 의원 25명은 미국의 북한 인권법 제정에 반대하는 서한을 미 대사관에 전달했다. 내가 북한 인권법을 발의 했을 때도 “북한을 자극해 자칫 남북관계를 경색시킬 우려가 있다”고 반대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6년째 묶여있는 북한인권법이 미국에서는 어떻게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을까?
현 캔자스 주지사 샘 브라운백이 “2003 북한 자유 법안”을 발의했다. 이어서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위원장 헨리 하이드)의 동아태소위원회(위원장 짐 리치)에서 일하던 변호사 더그 앤더슨(Doug Anderson)이 “2004 북한 인권법”을 기초했다. 더그는 북한 인권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으며, 북한 인권 운동가인 수잔 숄티가 여러 차례 기획한 탈북자의 의회 청문회를 준비하고 성공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준비된 북한 인권법을 연방 의원들과 미국무부 관리들에게 알리고 밀어 부친 사람은 수잔 숄티와 북한자유연대(North Korean Freedom Coalition)의 마리암 벨 등이었다. 워싱턴과 뉴욕에 있는 NGO와 언론인들도 힘을 보탰다. 2004년 북한 인권법이 통과되었을 때, 짐 리치 소위원장은 특별히 북한자유연대를 지목하며 그 공로를 치하했다.
미 의회는 북한 인권법을 세 차례 표결하면서 모두 의원들 개인이 각자 투표한 것이 아니라, “이의 없습니까?” 물은 뒤 “이의 없으므로 만장일치로 통과”라는 호명 투표(voice vote)로 통과되었다. 공화당이 법안을 만들었지만, 민주당으로서도 반대할 명분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세 번 모두 만장일치로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 인구의 1/3이 지난 70년간 실험했던 사회주의는 완전히 실패했으며, 그중에서도 북한은 가장 철저하게 실패한 나라이다. 북한은 어린이를 비롯하여 수백만 명의 주민들이 굶주리도록 방치하고 수십만 명을 정치범 수용소에 가둔 채 역사상 유례가 없는 3대 세습왕조를 만들고 있다.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으로 넘어온 탈북자가 2만명이 넘었는데, 이들이 증언하는 북한의 인권 실상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북한인권 기록보존소라는 단체는 지난달 21일 북한 정권이 어린 아이나 가족에게까지 공개총살을 강제로 지켜보게 하고 있다는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단체가 탈북자 1만3000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북한에는 최소 182곳의 구금시설이 있으며, 수감자들은 매끼 한 그릇도 안 되는 옥수수죽과 소금국으로 연명할 정도로 생존권의 위협도 심각하다. 북한 전체가 거대한 수용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회는 미국 의회가 7년 전에 통과시킨 북한 인권법을 아직도 통과시키지 않고 미적거리고 있다. 캄캄한 어둠속에 갇혀있는 사람에게 가장 큰 위안은 누군가 나를 생각해주고,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만큼 큰 희망은 없다. 우리가 군사독재에 신음하던 시절, 대한민국의 인권에 관심을 가져주는 외국 인권 단체의 존재만으로도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크나 큰 위안이 됐다. 우리는 깜깜한 암흑천지인 북한에 희망의 빛을 비춰야 한다. 북한 인권법은 북한 주민을 위한 자유와 인권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나중에 통일이 된 뒤 대한민국이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해 무엇을 했냐고 물으면 무슨 대답을 할 것인가.
지난달 20일 영국 상·하원 의원 20명이 대한민국의 여야 4당 대표에게 북한 인권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영국 의회 내 초당적 단체인 ‘북한에 관한 상하원공동위원회(APPG)’ 소속 의원들은 서한에서 “북한의 인권을 증진하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국제사회 이익에 부합 한다”며 인권법 제정을 권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8월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북한 인권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북한 인권법이 통과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특히 한나라당의 의정활동을 이끌고 있는 황우여 원내 대표는 ‘북한자유이주민의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의 의장으로서 북한 인권을 위해 늘 앞장 서 온 분이기에 기대가 더욱 크다.
이영규 기자 fortun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