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세계가 미국의 부채한도 협상과 신용등급 강등, 유럽 재정적자위기 확산으로 요동치던 이번주, 중국 국방부는 은근슬쩍 자신들의 항공모함 보유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사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공공연한 ‘비밀’ 중 하나였다. 이미 인터넷에는 중국 라오닝성 다롄조선소에서 한창 개장 공사 중인 항모를 찍은 사진이 널려 있다.
그리고 중국은 문제의 항모가 10일 첫 시험항해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미국을 비롯해 각국이 우려의 시선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데이빗 밀러 미 태평양사령부(PACOM) 사회정치애널리스트는 8일 허핑턴포스트에 ‘중국의 항모 보유가 왜 문제인가’라는 기고문을 실었다.
사실 항공모함 보유는 중국인민해방군의 오랜 숙원 중 하나였다. 오랫동안 연안해군 전략을 고수해 온 중국 해군은 대내적으로는 개혁개방정책에 따른 경제성장, 대외적으로는 구소련 붕괴라는 정세를 타고 급속히 현대화와 대양해군 전략으로의 전환을 진전시켰다. 그 정점이 바로 항공모함 보유다.
이를 위해 중국은 홍콩에 유령회사를 차리고 구소련 붕괴 이후 건조가 중단된 채 방치됐던 ‘쿠즈네초프’급 항공모함 2번함 ‘바랴그’를 지난 1998년 우크라이나에서 사들였다. 마카오에서 해상카지노로 쓰겠다는 명목이었지만 각국 국방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믿지 않았다. 속내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중국 기업들이 러시아 해군이 퇴역시킨 키예프급 항모 두 척을 사들여 해상공원으로 만든 전례가 있기에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이중 하나는 1995년 한국 기업이 고철용으로 사들였다가 지역 주민들의 반대와 ‘한국이 항모를 만들려고 한다’는 일본의 반발 때문에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중국에 다시 팔았던 배다.
아니나다를까 2002년 3월 고철덩어리 항모가 예인된 곳은 마카오가 아니라 중국 해군 기지와 대형 조선업체들이 있는 다롄이었고, 곧 미국 등의 정보당국은 중국이 항모 개조작업에 들어갔음을 파악했다. 그리고 2005년 다롄항에 계류된 바랴그호의 선체가 중국 해군의 제식 색깔로 도장됐다. 올해 6월에는 천빙더(陳炳德)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이 홍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항모 건조 사실을 처음으로 시인했다.
그렇다면 중국이 항공모함을 보유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며 왜 세계 각국이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이미 인도·태국·브라질도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인도나 태국이 세계 패권을 노릴 것이라고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중국의 항공모함은 이제 막 시험항해를 시작했을 뿐이고 함재기와 호위함들까지 갖춘 완전한 항모전단을 구성하기 전까지는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못한다. 또 ‘바랴그’는 이미 지난 20년도 지난 설계의 산물이며, 미국 해군에 비교하면 최소 30년의 기술격차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 해군의 경우 70년이 넘게 항공모함의 운용과 유지보수, 항모전단 전략·전술, 실전 경험을 쌓아 왔다는 점이다. 이것은 후발 주자인 중국이 기술력만으로 절대 극복할 수 없는 격차다. 충분한 운용경험과 탄탄한 방공체계가 없다면 항공모함은 그저 바다 위의 거대한 목표물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중국의 항모 보유는 중국의 세계전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에 주의를 기울여 봐야 한다. 우선, 중국 군부와 외교 독트린 사이의 격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1월 중국의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J-20의 시험비행이 공개된 직후 당시 중국을 방문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후진타오 국가주석에게 이를 묻자 후 주석이 당황했던 사례가 단적인 예다. 당시 외신들은 미국 측 관리들을 인용해 후 주석 등 최고지도부가 ‘정말로’ 몰랐을 가능성이 크며 이는 중국 군사력을 과시하려는 군부의 의도적 돌출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항모의 경우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인민해방군은 항모 프로그램이 사실상 공공연히 노출됐음에도 계속 부인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비밀 자체는 비난받을 일이 될 수 없다. 기본적으로 모든 나라의 군부는 비밀을 유지하려는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외교정책을 볼 때 비공개, 그리고 깜짝 발표를 통한 신무기 과시는 분명히 괴리가 나타나는 부분이다.
현 후진타오 주석이 이끄는 중국 지도부는 대외적으로 중국의 급속한 국력 부상이 대립이 아닌 평화적 협력을 통해 이루어질 것임을 천명해 왔다. 량광례(梁光烈) 중국 국방부장은 올해 6월 “평화적인 발전의 길은 필연적인 전략적 선택이며, 중국의 국방정책은 ‘방어적’ 차원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당과 정부 최고지도부는 이를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 ‘방어적’이란 용어의 정의가 어디까지를 말하는지 의문을 품고 있다.
실제로 항모가 배치되면 최근 몇 년간 영유권 분쟁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 남사군도와 서사군도 등 문제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은 급속히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굳이 미국의 항모전단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도 없다. 중국 남부 해역에서 항공모함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중국군의 초기대응능력은 크게 배가된다. 여기에 항모에서 작전하는 항공력이 더해진다면 대만·일본·베트남·필리핀 등 주변국들에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원인이 된다.
게다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국의 항모가 하나가 아닌 셋, 아니면 다섯 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 관계자는 “상하이 장난조선소에서 추가로 항모 두 척이 건조중에 있다”고 언급했다. 중국군의 한 장성도 “인도와 일본이 2014년까지 세 척의 항공모함을 가질 것으로 예상되며(이는 상륙모함까지 포함해 말한 것이다. 중국은 한국의 ‘독도함’도 ‘항공모함’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항모 수는 셋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만약 항모가 두 척이 더해진다면 중국의 군사력은 이전과는 차원이 달라진다. 현재 항모를 2척 이상 보유한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 항모 추가 건조는 상시적으로 항모전단을 운용·전개할 수 있는 전력 투사능력을 갖춘다는 말이자 산업 기반까지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항모 프로그램이 자국의 영토방어를 위한 것이라는 명목도 설득력이 떨어지게 된다.
밀러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항공모함 보유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국제사회가 이를 막을 근거도 없다”면서도 “그러나 중국 지도부가 내세운 평화적 발전과 국제 협력의 강조가 자국의 군사력 팽창을 통해 미국을 밀어내고 태평양의 패권을 쥐려는 것을 은폐하려는 것이었다면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21세기 새로운 세계질서에서 강대국의 리더십이 과거 20세기처럼 군사적 ‘헤게모니’가 아닌 평화적으로 구축될 수 있다면 이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 됐겠지만, 중국은 이같은 기회를 얻었고 또 외교수사적으로 그럴 것임을 공언하면서도 과거를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는 “강대국 간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꼭 값비싼 군사력의 시현이나 무력 충돌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며, 이는 과거의 역사에서 인류가 배운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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