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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 미국의 신빈곤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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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공순 기자]지난 6월말 기준으로 4450만 명의 미국인들이 정부의 생계보조 (Food Stamp)를 받고 있다. 역대 최고 기록이다. 미국인의 14.6%가 정부의 보조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것이다. 금융위기가 시작되기 전인 2007년 말에는 이 숫자는 2600만이었다. 3년 반 만에 1700만명, 거의 70%가 증가했다. 그와는 별도로 실업수당을 받는 이른바 '99인생' (실업급여가 지급되는 기간이 99주라 붙여진 별칭; ninety niners)들이 400만을 넘는다. 그나마도 올해 말이면 이 가운데 200만 명이 급여시한을 소진해 통계에서 사라진다.


공식 실업률은 9.1%지만, 그건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일자리를 찾다 못해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는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인구 가운데 일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의 비율은 58.1%로 1983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불완전고용율 (파트타임)은 16%를 넘는다. 그렇다고 쌓아놓은 돈이 있어서 버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30대 직장인 가운데 25%가 실직하면 2주후에는 생활비가 떨어질 것이라고 대답했다.

미국 NFCC(전국크레딧카운셀링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64%의 미국인이 비상시를 대비한 1,000달러(약 1백 8만원) 정도의 현금도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를 진행한 협회 대변인은 “소비자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뜻”이라면서 “긴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이들은 재정적 곤궁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응답자들 가운데 17%가 비상금 1000 달러를 마련하기 위해 크레딧카드 대금이나 모기지(주택대출상환금)를 납부하지 않겠다고 대답한 것이다. 그리고 12%는 가진 물건을 팔거나 전당포에서 돈을 마련하고, 17%는 가족이나 친구에게서 빌릴 것이라고 했다. 미국 소비자들이 버티고 있는 것은 모기지를 내지 않고 생필품을 사고 있기 때문이라는 미국 네티즌들의 우스개가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8일자로 미국 전역의 빈곤과 실업문제를 다룬 기사를 실었다. 그 기사에 소개된 32살난 플로리다 여성은 2008년 남편의 실직 이후 사실상 수입이 거의 없는 영업직으로 살아간다. 그녀는 주식시장이 붕괴하든 말든 관심이 없다. 저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돈 쓰기를 겁낸다”고 그녀는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그저 살아남아야죠”(just survive). 그들은 아무 소용도 없는 전쟁으로 부채만 늘린 부시 전 대통령을 원망하고, 월스트리트의 은행가들을 욕하며, 국가부채논란으로 말만 많은 의회를 비웃고,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했다.


지난 6월 그리스에서 구제금융을 받아들일 것이냐를 놓고 시위가 한창일 때, <블랙 스완>의 저자인 나심 탈레브는 한 텔레비전 방송 인터뷰에서 "당신은 지금 그리스에서의 대중시위를 블랙 스완(관찰되지 않았거나,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됐던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천만에, 진짜 블랙 스완은 지금 런던과 뉴욕의 길거리에서 대중들이 폭동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50일을 채 넘기지 않아서 검은 백조는 런던에서 날개를 펼쳤다. 아마도 놀랄 일이 아니어야 마땅할지도 모른다.


미국인들은 이제 정치를 믿지 않는다. 오바마의 ‘변화와 희망’이라는 선거 구호가 결국은 월스트리트 희망에 불과했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개혁에 대한 믿음은 끝났다. ABC방송의 최근 조사에서는 국민의 77%가 양당 제도를 불신했고, 6%만이 현재 의회의 결정을 지지했다. 오바마의 지지율은 40% 이하로 떨어졌다. 제도에 대한 불신과 경제적 빈곤은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킨다.


영국 폭동이 났을 때, 미국인들은 미국 사회가 런던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엘리트들과 금융자본이 무언가를 빨리 내놓지 않는다면 그 말은 사실이 될지도 모른다. 다만 미국은 총을 가진 런던이 될 것이다.




이공순 기자 cpe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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