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물폭탄이 쏟아지며 피해가 막심하다. 예년 장마와 달리 비가 계속 내리고 강수량도 훨씬 많다. 중부지방에 장마가 시작된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전북 전주와 충북 청주는 하루 빼고 19일 내내, 서울은 보름 동안 비가 왔다. 중부지방의 강수량은 593.2㎜로 예년 같은 기간의 4배에 육박했다. 그 바람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크게 올랐다가 겨우 안정세로 돌아섰던 농산물 가격이 다시 급등해 물가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얼마 전부터 여름 날씨가 달라진 것은 기상청 통계가 입증한다. 그전에는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장맛비가 내렸고, 기간도 6월 말부터 한 달 정도로 뚜렷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저기압과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훨씬 자주 내린다. 연간 강우량도 과거 1200~1300㎜에서 1400㎜ 정도로 늘었고, 7월에 많이 내리던 것이 8월로 옮아갔다. 1990년 이전보다 비의 세기도 강해져 12시간 동안 80㎜ 이상 내리는 호우 빈도가 25%, 150㎜ 이상 내리는 빈도는 60% 많아졌다.
기상학자들은 이를 우리나라 날씨가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받아 아열대 기후로 변하는 징후로 본다. 8~9월 강수량 증가에 5월 봄장마까지 나타나는 열대지방의 우기(雨期)와 같은 형태의 날씨라는 것이다. 그래서 6~8월 여름을 우기로 부르자는 의견을 냈다.
기상청도 이를 알고 있다. 2007년에는 우기 개념 도입을 논의하는 학회를 열기도 했다. 2008년 '장마 발생과 소멸 시기가 뚜렷하지 않아 2009년부터 장마 예보는 폐지하고 여름이 시작되면 우기로 명명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장마라는 표현을 쓰고 있고, 여름철을 우기라고 한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6~7월 길어야 두 달 장마가 아닌 길게는 6~9월 넉 달 우기가 해마다 닥치면 바꾸고 대비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 배수시설과 하수도 용량 등 수해 안전기준을 바꿔야 한다. 경사지 주변 도로 건설과 건축물의 안전 기준도 달라져야 하고 비닐하우스 물빠짐 수로도 더 깊이 파야 한다.
여름 날씨는 이제 우산 장수나 아이스크림 장수만의 걱정거리가 아니다. 개인 일상은 물론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제 장마의 추억은 접고 '한국형 우기'에 제대로 대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