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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 고양이에게 맡긴 생선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1분 41초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3가지, 즉 병(兵)ㆍ식(食)ㆍ신(信)이 중요하다고 했다. 세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면 제일 먼저 병을, 다음으로는 식을 버릴 것이고 끝까지 신을 지켜야 한다고 설파했다. 백성이 왕을 믿고 따르고 왕이 역시 백성을 믿게 할 때 설령 나라를 빼앗겼다 할지라도, 굶주림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공자가 오늘날 환생하여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답을 했을까. 아마도 '신'의 중요성을 더 강조했을 것이라 본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말이 실감나게 느껴지는 시장경제 체제에 살고 있으며 '돈'에 대한 믿음이 사회의 근간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돈은 경제생활을 하는 데 최고의 매개체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가치가 있다고 믿는 재화이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나 2년 전 화폐개혁에 실패한 북한의 예를 생각하면 쉽게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돈의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중앙은행의 독립이 중요하고, 돈의 흐름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감독기관이 필요하며, 금융기관 종사자에게 고도의 전문성과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더 강화될 것이다.

지난 2월 부산저축은행 등 여러 저축은행이 집단으로 영업 정지된 지 4개월이 지났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중간 수사 결과에 의하면 이 은행 임직원들이 영업정지 전 고액 예금주 40명에게 이 사실을 알려 51억원을 인출하게 하고 본인과 지인들의 예금 34억원을 인출했다고 한다. 검찰은 부당 인출된 85억원을 환수하고 영업정지 사실을 알려준 임원 3명을 업무방해죄와 업무상 배임죄로 기소하기로 했다.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과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장은 이미 구속됐고,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의 이름까지 거론돼 이 은행 피해자들은 물론 모든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누구보다도 '돈'에 대한 '신'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시정잡배처럼 행동한 것이다.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긴 셈이다. 고양이를 잡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도덕한 고양이를 생선가게 감시자로 임명한 인사 시스템과 책임자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또 수사를 철저히 해 비리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밝혀내야 하며 사후약방문이라 할지라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선 감독 기능을 다중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감사기관끼리 상호 감시하는 시스템 구축이 급선무다. 감사원의 위상을 정치 중립적으로 만들어야 하며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금융전문 대학원을 설립하고 전문성 교육 강화와 도덕성 제고 교육이 마련돼야 한다. 경제 범죄에 대해 보다 엄정한 처벌을 내려야 하며 또 사회 전체의 도덕심과 책임감이 향상돼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의 돈이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특히 저축은행의 예금주는 주로 서민이고 그야말로 하루하루 힘들게 벌어 이자 몇 푼 더 받겠다고 자기 목숨과 같은 돈을 맡긴 사람들이다. 이번 사건은 이들의 피땀을 소수 악덕한 대주주와 그를 비호한 썩은 감사ㆍ감독기관이 합작해 갈취한 사건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에 중수부 존폐 문제까지 겹쳐 복잡한 양태를 띠게 됐다.


우리 사회의 원로인 손봉호 교수는 "가슴 아프지만 이번 사태는 우리가 후진국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통렬하게 지적했다.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기는 우리의 어리석음은 어느 개그우먼의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라는 말이 대변한다고 생각하니 씁쓸한 생각이 든다.


임상일 대전재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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