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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지구의 종말과 반값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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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지구의 종말과 반값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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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노스트라다무스의 책을 읽고 며칠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서른 남짓한 나이에 지구가 사라질 텐데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느냐는 생각에 공부에도 심드렁해졌었지요. 지구종말론과 관련된 기사를 하나 접하면서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일본의 지진을 비롯한 지구 곳곳의 자연재해, 빈발하는 국지적 분쟁 덕분에 지하 벙커를 파는 업체나 몇몇 신흥종교들이 재미를 보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지구종말론은 공포 마케팅의 아주 고전적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부정적 감정(공포, 부끄러움, 죄책감)을 접하면 우리는 그 불편함을 회피하고자 어떤 '활동'을 추구하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강한 공포감을 조성하고 그 공포감을 해결하려면 어떤 상품을 구매해야 한다고 설파하는 공포 마케팅은 깨닫고 나면 불쾌해지는 일이지만 효과가 검증된 감정 마케팅 방법입니다. 비싼 부적을 쓰지 않으면 집안이 망할 거라고 자못 엄숙하게 선언하는 점쟁이의 수법, Y2K로 세상에 대란이 벌어질 거라는 협박과 같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일상의 위험을 실감나게 보여준 다음 보험상담 전화번호를 친절히 안내해 주는 광고는 오늘도 진행 중이고요.


우리나라에서 공포 마케팅으로 가장 성공한 산업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사교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자녀는…'으로 시작되는 수많은 광고 문구들은 학부모의 불안감을 자극하여 어린 학생들을 사교육의 쳇바퀴 속으로 밀어넣게 합니다.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학원을 끊을 수 없는 것은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교육을 겪고 어렵게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에게도 공포 마케팅은 여전히 힘을 발휘합니다. 만만치 않은 취업 전망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해서도 소위 '스펙'을 갖추기 위해 하루하루 쫓기면서 살아갑니다. 어학연수는 기본이고 각종 공모전에 사회봉사도 필수입니다. 요즘엔 인턴십도 빼놓으면 안됩니다. 이런 것들을 총칭하는 취업 3종 세트니 4종 세트니 하는 말들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업과 각종 단체들이 계속 새로 만들어내는 각종 자격시험들까지 더하면'대학생이면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취업에 필수적인' 일들은 셀 수 없이 많기도 합니다. 대학생들이 이런 준비를 위해 지출하는 돈은 등록금을 훌쩍 뛰어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이른바 '반값 등록금'일 것 같습니다. 언론에서는 대학이 매우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대학의 구성원들이 하는 일에 비해 지나친 대접을 받고 있다는 보도를 연일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사실과 다른 내용도 있고 좀 편파적인 주장도 없지 않습니다.


적어도 저는 일부 신문기사가 묘사하는 것처럼 월급을 올리려 등록금을 마구잡이로 인상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뻔뻔한 대학교 직원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매일 보는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알면서 그렇게 마음먹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학에 대한 세상의 이 매서운 질타가 대학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반성하라는 명령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생각해보면 부끄럽습니다. 저 젊은 청춘들에게 선생의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두려움에 영혼을 잠식당하지 않도록 든든히 잡아준 적이 있는지….


우리가 반값 등록금을 외치는 학생들로부터 경청해야 할 것은 젊은 세대의 불안을 더 이상 방치하거나 혹은 이용하지 말라는 호소인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렇게 들립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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