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강등의 아픔을 겪은 유명 클럽들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오늘은 '최고의 시즌'을 보낸 클럽들에 관한 이야기다.
우선 '최고의 시즌'이란 상대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질 필요가 있음을 밝혀 두어야 한다. 최고의 시즌을 절대적으로만 해석할 경우, 2010-11시즌 지구촌에서 이에 합당한 주인공은 이론의 여지없이 바르셀로나다. 그들은 스페인 리그를 비교적 여유 있게 제패하며 3연패에 성공한데다 런던에서 벌어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잉글랜드 챔피언을 상대로도 완승, 다시 한 번 유럽 정상에 오르는 강력함을 과시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시즌 성과 및 경기력이 바르셀로나를 '역대 가장 뛰어난 축구팀'의 후보들 중 하나로 평가받게끔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절대적 의미에서 바르셀로나와 대등한 시즌을 보낸 클럽은 없다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상대적 의미의 최고를 논하는 경우 바르셀로나 못지않게 훌륭한 시즌, 감격의 시즌을 보낸 클럽들도 여럿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젊은 감독 안드레 빌라스-보아스가 이끈 포르투의 활약은 괄목할 만하다. 포르투갈 리그가 최고 수준의 리그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챔피언스리그가 아닌 유로파리그에서 경쟁했다는 사실들을 감안하더라도, 리그에서의 경이적인 무패 우승을 비롯해 유로파리그와 포르투갈 컵을 망라한 3관왕에 올랐다는 사실은 자체로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2003년 동일한 3관왕을 달성했던 조세 무리뉴도 무패 우승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었다. 라다멜 팔카오와 헐크의 파워 넘치는 공격은 대회를 막론하고 위력을 뽐냈다.
릴에게도 지난 시즌은 감격의 한 해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 릴은 1954년 이후 처음으로 프랑스 정상에 올랐는데 그것도 멋진 공격 축구로써 이를 해냈다. 실상 프랑스 리그는 골이 많이 나지 않는 스타일의 이른바 '수비형 리그'. 그러나 에당 아자르, 제르비뉴, 무사 소우로 무장한 릴은 리그 최고 수준의 공격적 창조성을 과시했다.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특성을 약간씩 섞어놓은 듯한 벨기에의 젊은 마술사 아자르와 기술적이면서도 보다 직선적으로 득점에 가담하는 제르비뉴가 모두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독일에서는 20대 초반 '젊은 피'들을 앞세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9년 만에 왕좌에 복귀하며 명가 부활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도르트문트는 빠른 템포의 공수 전환과 압박으로써 경기를 지배하곤 했는데, 이는 감독 위르겐 클롭의 '아이들'이 왕성한 체력에다 적절한 재능까지 지니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토털풋볼의 색채가 농후했던 도르트문트의 경기 스타일은 루카스 바리오스 이외에 다양한 선수들이 득점에 가세하도록 만들었던 원동력이다.
한편 릴이나 도르트문트보다 더욱 극적이게도 루마니아 리그에서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한 클럽이 등장했다. 부쿠레슈티의 더 유명한 명문들을 모두 제치고 우승을 거머쥔 주인공은 오텔룰 갈라티. 챔피언스리그 출전권도 갖게 된 오텔룰은 K리그 출신의 김길식이 한 때 몸담았던 클럽이기도 하다.
리그 우승을 거머쥔 것은 아니나 그 이상의 값진 성과를 일궈낸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탈리아의 우디네제다. 1년 전 만해도 우디네제가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따내리라 예상했던 이는 거의 없었지만, '중소 클럽 전문가' 프란체스코 귀돌린이 예의 장기를 발휘, 자신의 세리에A 경력에서도 가장 높은 팀 순위(4위)를 이끌어낸 것.
특히 귀돌린 감독은 알렉시스 산체스의 위치를 안토니오 디 나탈레의 후방으로 이동시켰는데, 이 전술적 판단이야말로 성공의 요인들 가운데 하나였다. 팀 성적은 시간이 흐를수록 상승했고 산체스는 '우디네제의 메시'가 되었다. 노장 디 나탈레는 이전 시즌과 마찬가지로 30골에 육박하는 마무리 솜씨를 뽐냈으며 괴칸 인러, 마우리시오 이슬라, 콰둬 아사모아 등도 모두 제 몫을 해냈다.
우디네제 수준의 놀라움을 선사한 것은 아니지만 이탈리아 3위에 오른 나폴리에게도 기념비적 시즌이기는 마찬가지다. '마라도나 시대' 이후 클럽의 팬들을 가장 즐겁게 했을 법한 2010-11시즌, 나폴리 최고의 공로자는 누가 뭐래도 공격수 에딘손 카바니. 작년 여름 새로이 나폴리 유니폼을 입었던 카바니는 경이적인 골 사냥 솜씨를 발휘하며 자신의 축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인상이다. 물론 마렉 함식의 공헌 또한 경시될 수 없다.
유로파리그에서 나폴리를 탈락시킨 바 있는 스페인의 비야레알도 예상치를 상회하는 좋은 시즌을 보냈다. 물론 비야레알의 4위 역시 우디네제 만큼의 놀라움은 아니다. 그러나 세비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경쟁자들을 안정적으로 따돌리고 세 시즌 만에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따냈기에 자체로 값진 결과임에 틀림이 없다. 시즌 막판 팀 전체의 힘이 다소 떨어지는 인상이긴 했지만 쥬세페 로시, 보르하 발레로와 같은 중심축들이 대체로 탁월한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어쩌면 스페인에서 상대적으로 최고의 성과를 일궈낸 대표적인 두 클럽은 레반테와 스포르팅 히혼일는지도 모른다. 시즌 상반기까지만 해도 생존이 어려워 보였던 승격 클럽 레반테는 겨울 이적 기간 이후 기록적인 상승세를 나타내며 클럽의 지상 목표를 달성했다. 전 맨체스터 시티 공격수 펠리페 카이세도가 긴요한 역할을 했다. 역시 후반부 상승세가 놀라웠던 스포르팅 또한 전 시즌보다 다섯 계단 상승한 10위로 시즌을 마쳤는데, 이 과정에서 특히 9년 넘게 지속되어온 조세 무리뉴의 리그 홈경기 연속 무패를 마감시켜버린 사건이야말로 스포르팅의 시즌 하이라이트였다.
한 준 희 (KBS 축구해설위원 / 아주대 겸임교수)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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