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미국 경기침체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면서 재선 행보에 바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주택·부동산시장,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둔화되고 있는 제조업 경기에 실업률까지 9%선을 다시 돌파하면서 최악의 경우 ‘더블딥(일시적 회복 후 재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한 백악관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 경제는 분명히 ‘역풍’을 맞고 있다”고 언급해 현재 미국 경제가 침체 국면임을 확인했다. 그는 “5월 고용지표의 부진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지속적인 추세가 될 것인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면서 일자리 창출이 더딘 점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경기둔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느리게나마 경기 회복은 계속되고 있으며 더블딥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하면서 “우리가 할 일은 지나친 우려나 과민반응 없이 계획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에게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최근 발표된 경제지표는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를 걸기 무색할 정도다. 7일 미 노동부가 발표한 4월 신규고용은 지난 1월 이후 최저인 297만건으로 15만1000건이 줄었다. 5월 실업률은 9.1%로 연중 최고치로 올랐고 실업자는 1100만명에 달했다.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의 5월 제조업지수는 53.5로 지난 2009년 9월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고 지난달 말 발표된 3월 S&P·케이스쉴러 주택가격지수는 200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해 주택시장이 2년 가까이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일부 민간부문 경제전문가들은 2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을 3.0%에서 2.0%이하로 낮춰 잡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연일 추락하고 있다. 7일 발표된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의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9%가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정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는 한달 전 55%보다 늘어난 것이다.
재정적자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 지지는 33%로 최저치를 나타냈다. 또 89%는 미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으며 57%가 경제회복에 시동조차 걸지 못했다고 평가했고 66%는 미국이 심각하게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 응답자의 45%는 경제정책에 있어 오바마 대통령보다 공화당을 더 신뢰한다고 답했으며 유력 공화당 대선주자 미트 롬니 전 메사추세츠 주지사는 지지율 49%로 46%에 그친 오바마 대통령을 앞섰다.
이같은 결과는 재선을 준비해야 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빨간불이 켜진 것과 다름없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30년대 이후 미국 대선에서 실업률 7.2% 이상인 경우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전례가 없다고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현재 시행중인 일부 경기부양책을 올해 이후로 연장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하원을 내주는 등 대패한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은 부유층을 포함한 전 계층과 기업에 대한 감세 연장안을 통과시켰다.
이같은 입장 변화는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에 방향 전환이 가능함을 시사한다. 때맞춰 오바마 대통령의 최측근인 오스탄 굴스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9월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굴스비는 오바마가 상원의원에 출마했던 2004년부터 함께 한 인물이다. 백악관을 떠난 로렌스 서머스 국가경제회의 의장, 피터 오재그 백악관 예산국장, 크리스티나 로머 경제자문위원장에 이어 그가 사임하면 오바마 행정부 출범 1기 경제팀은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유일하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통화정책 차원에서의 추가 경기부양에 대해 부정적인 것도 변수다. 6000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매입하는 2차 양적완화(QE2) 정책이 6월로 끝나는 가운데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지난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3차 양적완화(QE3)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고 7일 리처드 피셔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이미 시장에 충분한 유동성이 공급됐다”면서 3차 양적완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버냉키 의장은 이날 애틀랜타에서 열린 국제금융인회의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추가 부양책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아 시장을 실망시켰다.
윌리엄 갤스턴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오바마 대통령은 여전히 희망어린 메시지로 치장하고 있다”면서 “낙관론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겠지만 대중들이 실제로 겪고 느끼는 것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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