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어제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더라도 약사법상 의약품은 약국을 통해서만 팔게 돼 있기 때문에 약사들이 담합해 약을 안 넣겠다고 하면 실질적으로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법을 핑계로 일반 약의 슈퍼 판매 정책을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얘기다. 불합리한 규정이 있다면 고쳐서라도 추진하는 게 옳다. 지레 '현실적 한계' 운운하며 포기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다.
진 장관은 정책 포기와 관련해 "약을 (약국 외 장소에) 깔아 놓을지가 문제가 아니라 약국이 문 닫는 시간에 발생하는 응급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국민이 일반 약의 슈퍼 판매를 원하는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이다. 응급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약품 접근성을 높여 달라는 것이다.
지금은 감기약, 소화제 등 급할 때 우선 찾게 되는 가정상비약도 약국에서만 판매하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야간이나 공휴일에 영업 중인 약국을 찾아다니느라 진땀을 흘린 국민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언제 어느 때고 집 근처 약국에서 원하는 약을 손쉽게 살 수 있다면 슈퍼 판매를 허용하라는 얘기가 나올 이유가 없다.
복지부와 약사회가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안전성 문제도 그렇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 4월 전국의 당번약국 119곳을 조사한 결과 95%(102곳)가 복약지도를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사 30분 후에 드세요'가 복약지도의 전부다. 그러고는 약사들은 건당 720원씩 받는다.
소비자들이 슈퍼 판매를 바라는 약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소화제나 감기약, 해열제, 영양제 등 안전성이 검증된 가정상비약이다. 오남용 우려도 과장된 측면이 크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아이들도 약국에서 감기약이나 소화제를 살 수 있는 게 현실 아닌가.
진 장관은 "약사회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다"라고 말만 할 게 아니다. 안전성이 검증된 가정상비약은 급할 때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편의를 생각한다면 가까운 슈퍼나 편의점 등에서 살 수 있도록 법을 고치는 것이 당연하다. 법을 내세워 약사의 약품 독점 판매권을 옹호하려 하지 말고 '국민의 눈치'를 보는 장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