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을 재개한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서 첫 탈락자가 나왔다. 전 연출자인 김영희PD가 아닌 신정수PD의 ‘나가수’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잡히는 시점이다. 물론 무대를 통해 경연을 펼치고 청중 평가단의 투표로 한 사람을 탈락시킨다는 기본적인 틀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출자의 변화는 ‘나가수’의 많은 것을 바꾼 듯 하다.
새로 시작한 ‘나가수’의 가장 큰 특징은 가수들의 무대의 이면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김범수가 리허설 중 자신의 최고음을 내는 하일라이트 장면이나 김연우가 야심차게 준비한 무반주 육성 장면은 보통의 쇼라면 아마 편집되었을 것이다. 그래야 경연 무대에서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가수’는 본 무대에서의 감동이 약간 희생되더라도 가수들이 리허설에 얼마나 신경 쓰는지 보여준다. 이전의 ‘나가수’가 가수들에게 무대 전의 긴장감에 대해 묻곤 했다면 현재의 ‘나가수’는 무대에 임하는 각오나 편곡 포인트를 물으면서 노래의 해석에 대한 가수들의 입장을 듣는다. 또한 본 경연 무대에서 조명이 켜졌을 때 가수들이 무대에 등장하는 모습만을 보여주던 이전과 달리 무대 뒤에서 가수들이 대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무대가 끝나고 가수들이 대기실로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나가수’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화려한 무대 이면의 가수들
시청자들은 이런 무대 뒤의 모습을 통해 가수들이 어떤 기분으로 노래 하는지, 혹은 무대 뒤에서 어떤 모습인지 알게 됐다. 무대 전에 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가수를 볼 수 있었고, 몸이 안 좋은 후배 가수를 위해 향을 피워주는 선배 가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음향 감독과 스탭들이 좋은 무대를 위해 어떤 수고를 하는지, 또 리허설에서 가수들이 최고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확인 하는지도 알게 됐다. 반면 무대에 오른 다른 동료 가수의 의상을 보며 깔깔대고, 노래를 들으며 감탄하고, 감동하는 가수들의 표정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도 화려한 무대를 볼 수 있었을 분, 그 이면에 있는 가수들의 땀과 기분, 표정을 직접 볼 수는 없다. ‘나가수’는 바로 그것을 보여줬다.
이런 제작진의 태도는 ‘나가수’가 가수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가수’가 폐지되지 않는 한, 서바이벌이라는 프로그램의 콘셉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수들의 경쟁과 긴장감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과 그런 무대에 오르는 가수에 집중하는 것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쇼가 긴장감과 충격만을 강조할 때는 가수들도 부담감이나 긴장감에 대해서만 말한다. 이전의 ‘나가수’에서 김건모의 탈락에 대해 마치 이소라가 방송을 파행으로 몰고 가는 것 같은 편집을 한 건 경쟁과 서바이벌에 초점을 맞춘 쇼가 일으킨 문제였다. 반면 새로운 ‘나가수’는 가수들에게 집중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덕분에 김범수에게 막내둥이 캐릭터가 생겨났고, 박정현에게 ‘요정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윤도현, 임재범에게 ‘락앤롤 베이비’, ‘락앤롤 대디’라는 별명이 붙은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나가수’가 가수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토크의 양을 늘리고, 선곡 방식을 바꾸면서 뮤지션들은 과거와는 다른 태도로 경연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소라나 박정현처럼 전 주에 순위가 높았던 가수들은 좀 더 여유를 갖고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게된 것이다. 탈락한 가수의 무대를 다시 보여주었고, 동료 가수들이 보내는 코멘트를 붙이면서 탈락한 가수가 실력이 모자랐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편집 역시 ‘나가수’가 뮤지션을 어떤 태도로 다루는지 보여준다.
노래가 인생을 담을 수 있음을 보여주다
물론 ‘나가수’는 여전히 자극적인 쇼다. 서바이벌이라는 기본 포맷이 존재하는 한 벗어날 수 없는 태생적 한계일 것이다. 때문에 출근과 등교를 앞둔 일요일 저녁 평범한 갑남을녀들이 몇 시간 남은 달콤한 휴식을 편한 자세로 즐기기에는 피곤한 쇼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가수’는 KBS <해피선데이>의 ‘1박 2일’의 시청률을 결코 넘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가수’가 보여주기 시작한 가수들의 맨 얼굴이 주는 즐거움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가수들의 노래에서 더 많은 감정과 인생을 볼 수 있도록 만든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임재범의 ‘여러분’이 수많은 사람들을 눈물짓게 한 것은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고백함으로써 그의 노래를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그의 굴곡진 인생에 대한 동정의 의미가 아니라 그의 고백이 그의 노래에 얹혀지면서 사람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단 5분 안에 축약해서 표현할 수 있는 ‘노래의 힘’에 새삼 감동하게 된 것이다. ‘나가수’에 대한 우려 중 하나가 경쟁을 통해 가수를 극한의 고통으로 몰아붙이며 노래를 부르도록 만든다는데 있었다면, 현재의 ‘나가수’는 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해도 대중도 가수의 감정을 최대한 느끼도록 하며 가수가 한 곡의 노래를 부르는 과정에서 오는 고통에 대해서 알 수 있도록 한다. 예술에 순위를 매기고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음악이 예능이나 드라마에 기대지 않으면 좀처럼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다. 아이러니하게도 , ‘나가수’는 이런 시대에 가수들이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도 ‘노래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10 아시아 글. 김명현 기자 eigh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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