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경기도 양평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소년이 36년 만에 대학 강단에 섰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사진)이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정 장관은 18일 저녁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행정대학원 특강에서 중학교 2학년 때 명동 국립극장에서의 경험을 실마리로 강의를 시작했다. TV에서 보던 배우를 직접 본 데서, 국립극장의 어마어마한 규모에서 강렬한 문화충격을 받은 어린 소년은 '아, 내가 여기서 뒤처지면 영원히 낙오자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런 절박함을 이번엔 IT기업에서 엿보고 있다는 정 장관은 IBM이 세계최고 기업의 자리를 마이크로소프트(MS)에게 물려주고, 마이크로소프트가 다시 애플한테 넘겨준 것을 화두로 꺼내들었다. '콘텐츠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2007년부터 앱스토어를 열어 수많은 '콘텐츠'를 흡수한 애플의 성공 전략을 배워야 한다고도 했다.
앱스토어를 기반으로 한 '아이폰'이 국내로 들어올 때의 얘기로 말을 이어간 그는 "스마트폰이 처음 한국 시장으로 들어올 때 이를 막은 게 통신사들"이라며 "이들 통신사는 스마트폰이 없는 기존 시장에서 마케팅에만 6조원을 쓸 만큼 돈을 잘 벌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것을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통신 업계 시장을 키워 땅따먹기식으로 이를 나눠먹는 데만 힘써 온 통신사들, 이 때문에 뒤늦게 콘텐츠 시대에 합류한 업계들이 콘텐츠 시대와 마주한 한국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게 정 장관의 말이다.
이야기는 스마트폰에서 도요타와 월트디즈니로 넘어갔다. 그는 도요타와 월트디즈니의 매출액이 각각 280조와 39조로 7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 영업이익률을 보면 정반대라고 했다. 매출액에서 월등히 앞선 도요타가 수익률에서는 7%로 22%인 월트디즈니를 못 쫓아간다는 것이다. 정 장관은 수익률이 높은 콘텐츠 산업을 꽉 잡아 현재 시장 점유율 2.2%로 세계 9위인 한국 콘텐츠 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면 각계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콘텐츠 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방안으로 정 장관은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정부의 지원을 늘리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예산의 1%인 문화부 예산에서 콘텐츠 관련 1년 예산은 4800억원으로 전체의 0.16%에 불과하다고 말한 그는 "70~80년대 주력이던 선박, 자동차 산업에 전체 예산의 2~7%를 투자한 것에 비하면 이는 극히 적은 수치"라고 말했다. 콘텐츠 산업은 정부가 나서서 지원해야 하는 산업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교육 환경의 변화를 들었다. 그는 학부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던 사람이 대학원에 와서 기술을 배우고, 학부에서 기술을 배운 사람은 문화를 배우는 카이스트 기술문화대학원을 예로 들며 "통섭 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콘텐츠 시대에 맞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방안은 독서와 사색을 많이 하라는 것이었다. 콘텐츠의 시대를 맞아 우위에 서는 사람은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통섭과 융합에 능한 사람이므로 평소에 책을 많이 읽고 깊이 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장관은 강연의 끝에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든 시대적 변화를 읽지 못하면 뒤처지게 된다"며 "콘텐츠의 시대에선 '콘텐츠'를 가진 사람이 시장을 장악하는 법"이라고 전했다.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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