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정일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점령군' 논란에 휩싸였다. 국가 경제 발전을 의연하게 이끌어가야 할 재계 맏형이 '밥그릇 욕심'에 하위 단체들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이 볼썽사납다는 지적이다. 비판의 중심에는 정병철 전경련 상근 부회장이 있다.
정 부회장은 조만간 전경련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상근 부회장을 겸할 예정이다. 그동안 한경연은 전경련 회장이 연구원 회장을 맡아왔지만 이번에 상근 부회장직이 신설되면서 정 부회장에게 예속되게 됐다.
이는 한경연 예산을 30% 줄이고 29명인 연구원도 20% 가량 내보내는 조직개편의 일환으로 추진된다. 한경연은 즉각 반발하고 있다. 전경련 회장 직속이던 한경연을 상근 부회장 밑에 두는 것은 싱크탱크의 위상추락과 자율성 훼손으로 이어진다는 우려에서다.
조직개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꼬집는 목소리도 있다. 상근 부회장직 신설이 허창수 전경련 회장 부임 전 추진된 사실상의 '정병철 작품'이라는 점에서다. '자신이 스스로를 천거했다'는 뒷말이 무성한 까닭이다.
앞서 정 부회장은 작년 5월 한국광고주협회장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협회는 일부 시민단체의 특정 기업 불매운동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과정에서 전경련과 갈등을 빚어왔다. 결국 전경련의 압박은 통했고 정 부회장은 '전리품'을 챙겼지만 1988년 전경련 주도하에 '독립기구'로 설립된 광고주협회의 존립 철학은 퇴색되고 말았다.
흔히 전경련 상근 부회장직을 일컬어 '회장보다 쎈 자리'라고 한다. 전경련 회장이 명예직인 것과 달리 상근 부회장은 실권을 쥔 전경련 사무국을 대표하는 사실상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이 사석에서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자동으로 맡게 되는 자리는 수십 개에 달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들 자리가 '책임'이 아닌 '권력'으로 둔갑한다면 그 많은 타이틀은 오히려 '짐'이 될 뿐이다. 전경련의 점령군 논란이 씁쓸한 이유다.
이정일 기자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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