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인하, 절대 안한다는 아닌데…."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그래서 기름값에 붙는 세금을 깎아준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7일 오후 강남역 부근의 한 식당. 점심 식사를 하러 나온 넥타이 부대의 관심사는 단연 '유류세 인하 여부'였다.
정유사들은 이날 오전 0시를 기점으로 리터당(ℓ) 100원씩 기름값을 내리겠다고 했지만, 시민들의 불만은 여전했다. "주유소에 갔는데 아직 할인이 안 된다고 해 허탕만 쳤네." "리터당 100원이라고 해봐야 한 달 1만원 정도 줄어드는 건데 큰 도움이 돼?" "총리가 세금을 내린다던데, 정말 깎아주는 건가?"
물가가 무섭게 뛰는 요즘, 기름값은 어느덧 국민 관심사가 됐다. 가격이 오르내릴 때 와닿는 체감 효과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기름값에 따라 차량 통행량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걸 보면 체감 물가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 여부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그래서다. 특히 정유업계의 가격 인하 결정이 나온 뒤엔 기름값의 절반을 차지하는 세금도 내려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여기에 4·27 재보궐 선거를 앞둔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인하 불가' 방침을 밝혀온 정부는 코너에 몰려있다.
유류세 인하를 촉구하는 정치권의 목소리엔 여야가 따로 없다. 심재철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은 6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원유 수입액이 늘어 관세 수입 등이 크게 늘었다"면서 "정부가 유류세와 기름값을 내려 국민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날 손학규 민주당 대표도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정유사를 압박하고 비용과 마진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해 실질적인 가격 인하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의 압박이 잇따르자 김황식 국무총리도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 총리는 이날 국회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세수와 에너지 전략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류세 인하 부분도 검토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 총리의 언급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려운 상황이다. 세정을 맡는 기획재정부가 뚜렷한 입장을 정하지 못한 채 아리송한 설명만 되풀이하고 있어서다.
지난 7일 윤증현 장관은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한반도 선진화재단 행사 현장에서 "유가가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여러 방향에서 (부담을 낮춰줄 수 있는 방안을)검토하고 있다"면서도 "세금 조정시 그만큼 유가 인하에 도움이 되는지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윤 장관의 발언이 유류세를 낮추겠다는 것인지, 반대한다는 것인지를 두고 해석이 분분했던 그날,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확한 입장을 밝히겠다며 기자실을 찾았지만 혼란만 증폭시킨 꼴이 됐다.
이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단기적으로는 유류세 인하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유류세 인하를)절대로 안 하겠다는 입장은 아니다"라며 한 발을 뺐다.
그는 "지난 1분기 원유 수입량이 늘어 지난해보다 세수가 1조원 늘었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수출에 따른 관세 환급분을 고려하면 1년 전보다 4000억 정도 세수가 늘었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이 정도 세수가 늘었다고 유류세를 낮추라고 하긴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해 세율 인하에 반대한다는 종전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 관계자는 뒤이어 "재정부의 입장은 현 시점에서 단기적으로 유류세를 인하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것"이라며 "앞으로의 유가 상황 보아 가면서 비상대응계획(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는 기름값이 어느 정도 올라야 유류세 인하가 가능한지 등 구체적인 기준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그러면서도 "유류세를 절대로 낮추지 않겠다는 그런 입장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해 혼선을 빚었다. 들끓는 여론과 정치권의 압박 속에 정부가 여의도로 공을 넘긴채 눈치만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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