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중국에서 날로 벌어져만 가는 빈부격차로 '부의 분배' 문제가 국가 현안이 되고 있는 판에 중국 최고의 여성 부호는 “부자 2세를 이상한 눈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부의 정당성을 주장해 주목 받고 있다.
부자의 목소리를 낸 주인공은 중국 정협(政協) 위원으로 중국 3대 부호이자 중국 최고 여성 부호로 꼽히는 장인(張茵ㆍ54) 주룽지업(玖龍紙業) 회장. 재계 정보 조사업체 후룬바이푸(胡潤百富)에 따르면 장 회장의 재산은 380억 위안(약 6조5000억 원)이다.
광둥성(廣東省) 인민해방군 장교였던 그의 아버지는 1966년 문화대혁명 당시 '반혁명분자', '자본주의의 주구'로 몰려 강제노동수용소에 수감됐다 1976년 문화대혁명이 막 내리면서 석방됐다. 이후 야금업체 사장으로 변신한 그는 중국공산당 내의 인맥을 잘 활용해 승승장구했다.
8남매 중 맏이였던 장은 외국계 종이 무역업체에서 경리로 일하다 자기 사업을 구상했다. 폐지 수입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1985년 그 동안 모아놓은 450만 원 상당의 돈을 들고 홍콩으로 건너갔다. 당시 홍콩 경제는 호황이었다.
그러나 좁은 홍콩에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장은 1990년 남편 류밍중(劉名中)과 함께 홍콩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갔다.
남편은 대만 태생의 브라질 시민권자로 치과 의사였다. 부부는 폐지 재활용 업체인 아메리카중난(美國中南)을 세웠다. 여기서 생산된 종이는 중국으로 수출했다. 가족 기업인 아메리카중난은 2001년 이래 미국 최대 폐지 수출업체 자리를 고수해 오고 있다.
중국의 종이 수요에서 확신을 얻은 장은 1995년 중국으로 돌아가 주룽을 출범시켰다. 주룽이란 중국어로 '지복'(至福)이라는 뜻이다.
장은 2006년 3월 금융시장에 파문을 일으켰다. 홍콩에서 주룽 기업공개(IPO)로 4억8000만 달러(약 5400억 원)를 끌어 모은 것이다. 주룽은 궈허녠(郭鶴年)ㆍ리자오지(李兆基) 같은 아시아 재계 거물들과 연관된 펀드를 유치했다.
주룽이 중국의 포장지 시장을 독식하는 것은 아니다. 홍콩의 리원제지(理文造紙)가 주룽과 건전한 경쟁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주룽이 규모에서 더 큰데다 새로운 설비로 경쟁력도 강화했다.
광둥성(廣東省) 둥관(東莞)에 자리잡은 주룽 본사에는 오성홍기(五星紅旗)를 중심으로 양 옆에 브라질 국기와 성조기도 걸려 있다. 브라질은 류가 시민권을 갖고 있는 나라, 미국은 장 회장이 영주권을 갖고 있는 나라다.
1세기 전 중국에서는 주부를 '네이런'(內人)이라고 불렀다. 그야말로 '집에만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 오하이오 주립 대학의 오데드 셴카 교수는 "장 회장 같은 여성들이야말로 옛날 황태후 같은 지위를 회복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진수 기자 com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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