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정일 기자]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 '끝장보기식 싸움'으로 루비콘강을 건넜던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을 놓고 맞붙었던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부암장' 소송으로 갈라섰던 한진그룹이 오랜 다툼을 끝내고 해빙 무드에 진입했다. 자신의 뿌리를 잘라내는 것이 인력으론 쉽지 않음을 재확인한 셈이다.
가족간 혈투는 승자 없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우려했던 재계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실타래가 조금 풀렸을 뿐이다. 완전한 화해까지는 갈 길이 멀다.
우선 범 현대가 내 갈등 해결의 마지막 조각은 7.75로 압축된다. 그동안 혈투를 벌였던 현대건설 인수전이 일단락되면서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간 해빙 분위기는 자연스레 조성됐지만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7.75%는 여전히 화약고로 남아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건설 인수를 추진한 배경이 경영권 보호였던 만큼, 인수전에서 승리해 '적통성'을 확인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결단을 내릴 차례다. 인수전의 승자로서, 집안의 어른으로서 대승적인 행보를 보여줘야 한다.
때마침 21일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10주기를 앞두고 사진전 등 추모행사가 잇따른다. 정 회장과 현 회장간 맞대면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이 자리에서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모두 승자가 되는 절묘한 해법이 나오기를 재계는 고대하고 있다.
한진가도 부암장 논란을 일단락지으며 8년간의 집안 싸움을 끝냈다.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故) 조중훈 회장의 사가(私家)를 기념관으로 건립하기로 한 약속을 장남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키지 않는다며 차남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4남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볼썽 사나운 다툼이 입방아에 올랐다.
분란의 단초는 부암장이 제공했지만 형제간 신뢰 부재가 갈등의 더 큰 원인이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법원의 중재안을 형제들이 받아들인 것은 파경만큼은 막자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3남인 고 조수호 회장이 이끌던 한진해운의 계열 분리 문제다. 이 역시 가족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사심을 버린 이해 당사자들의 대승적 결단이 필요하다.
이정일 기자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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