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몰락을 눈 앞에 둔 리비아의 국가원수 카다피와 한국건설의 인연은 꽤 깊다.
1977년 신원개발이 국내 건설업체로는 처음으로 리비아 땅을 밟았다. 이후 대우건설과 현대건설, 삼성물산, 한양 등 대기업이 줄줄이 이곳에 진출했다.
1980년대 중반 동아건설이 대수로 공사를 따내면서 한때 리비아에서 일하는 국내 건설인력이 2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 시기 리비아 땅에서 모래바람과 싸우며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국내 건설업체들은 1977년부터 지난 달까지 리비아에서 366억달러(295건)를 수주했다. 대우건설과 동아건설이 각각 100억달러 이상씩을 계약해 리비아 공사 수주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리비아대수로관리청(GMRA)이니, 주택기반시설청이니 하는 발주주체가 있었지만 사실상 그 뒤에는 혁명지도자로 불리던 독재자 카다피가 있었다. 카다피와 국내 건설업체의 돈독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카다피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는 수시로 대면할 정도로 아주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리비아 특성상 모든 의사 결정이 카다피 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한국이 리비아에서 승승장구하는데는 카다피의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다른 편에서 보자면 선발 건설사 오너들이 카다피와 인간적인 신뢰를 쌓은 덕이기도 하다.
동아건설은 1984년 37억달러 규모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따냈다. 사하라 사막지하에서 뽑아낸 물을 리비아 북부 벵가지와 시르테까지 보내는 전장 1874km의 인공수로를 건설한 대역사다.
1단계 대수로 공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62억달러 규모의 2단계 공사도 동아건설이 따냈다. 한번 맺은 신뢰로 카다피는 총 공사비 100억달러 규모의 3, 4단계 대수로 공사 역시 동아건설에 몰아주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최원석 회장은 리비아 영빈관에서 카다피를 만났다. 리비아 방문 때 전용기를 타는 등 카다피로부터 국빈대접을 받았다.
대우건설도 리비아에서는 여전히 강세다. 세계경영을 외치던 김우중 전 회장이 폴란드,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등에서 막강한 인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우건설은 리비아에서도 '카다피의 약속이 있어야 가능한 공사'를 국내 업체로는 가장 많은 160여건이나 따냈다.
지난해 우리 외교관이 추방되는 등 리비아와의 외교 갈등에서도 국내 건설사 최고경영자(CEO)가 나서 막후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랜시간 독재자와 쌓은 신뢰와 인연 때문이다.
김민진 기자 asiak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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