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목회를 하던 윤익상(51) 목사와 이명자(52ㆍ사회복지사 2급)씨 부부는 1999년 강원도 영월군 북면의 산골마을 연덕리로 둥지를 옮겼다. 윤 목사 부부가 귀농을 결심한 건 신선한 공기가 그리워서도, 갓 재배한 유기농 채소가 그리워서도 아니다. 갈 곳 없어 방황하는 연덕리 아이들을 위탁교육하기 위해 마을을 찾았고, 이 곳에 이름만큼이나 따뜻한 따스울교회를 세웠다.
이들이 돌보는 아이들은 친부모가 없거나 있더라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위기가정 아이 6명이다. 1명은 초등학교 6학년이고 2명은 2학년이며 4학년생, 1학년생, 유치원생이 각각 1명씩이다. 귀농과 동시에 한 두 명씩 맡아 친자식처럼 길러온 아이들이 이렇게 컸다.
연덕리의 유일한 초등학교인 마차초등학교 연덕분교. 이 학교는 전교생이 14명 밖에 안 돼 지난해 폐교 위기에 처했었다. 관할 교육청이 연덕리 폐교를 논의하려 공청회를 열자 마을 주민 50여명이 달려가 "폐교는 절대 안 된다"며 항의했고 지금은 지자체 누구도 폐교의 '폐'자도 못 꺼낸다.
주민들이 몸소 나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건 윤 목사 부부와 따스울 교회 덕분이다. 아이들이 마을에, 연덕분교에 남아있기 때문에 주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학교를 지킬 수 있었다. 산골마을 주민들에게 아이들과 학교는 곧 미래다. 주민들은 아이들이 윤 목사와 따스울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오래오래 머물며 마을을 지켜주기 원한다. 더 많은 아이들을 불러들여 마을을 살려낼 수 있는 지렛대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윤 목사 바람도 주민들과 같다. 그는 "어린 아이들은 새싹, 노인들은 황금"이라면서 "준비가 안 된 노년은 재앙이다. 아이들을 잘 돌보고 지켜서 새싹으로 만든 뒤 갈고 닦으면 모두 황금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윤 목사가 바라보는 산골마을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그는 "규모가 작아서 그렇지, 소규모 학교 선생님들은 무척 열의가 있고 학습 프로그램도 잘 갖춰져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목사는 또 "분교에 원어민 영어 교사도 한 주에 한 번씩 오고 무용이나 바이올린도 배울 수 있다. 돈도 거의 안 들어 사교육비 부담도 적다"고 말했다.
윤 목사 부부는 오는 3월부터 공사를 해 건물을 한 층 높여 2층으로 만든 뒤 아이 7명을 추가로 데려올 생각이다. 정부 보조금은 사회복지사인 직원 1명 월급 뿐이지만 자발적으로 교회를 찾아 봉사하는 주민들 덕분에 세울 수 있었던 계획이다.
윤 목사의 구상은 따스울 교회에 머물지 않는다. 지자체와 주민이 조금만 협력하면 마을을 살리고 지역을 키워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 놓고 터잡을 수 있는 '살아있는 농촌'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윤 목사는 "아주 풍족해질 정도는 아니지만, 이 곳에 내려와 지내다보니 금전적으로 가치가 있을 만한 요소가 많이 보인다"고 했다. 그는 또 "이 지역 토질이 석회질인데다 당도가 높아서 배추가 아주 좋다. 배추를 만들어 그대로 팔지 않고 절여서만 팔아도 수익이 날 수 있다. 콩도 그냥 팔 게 아니라 메주로 만들고 메주로 된장을 만들면 괜찮은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주민들이 메주공장 세우는 걸 돕는 것도 목표 중 하나"라고 했다. 그의 머릿속엔 '비옥한 토질을 잘 이용해 수익사업이 가능토록 하면 젊은 층도 얼마든지 불러들일 수 있다'는 구상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국내 사회복지사는 약 40만명이다. 윤 목사는 이들의 힘이 농촌에도 적절히 배분되고 정부 차원의 지원이 조금 더 확대되면 본인이 더 많은 아이를 데려다 키울 수 있는 것은 물론 전국 곳곳의 더 많은 시골 마을이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연과 어우러져 '사람'을 배우고 '관계'를 터득하게 해주는 시골교육의 참가치를 지키고 마을을 살리는 데 온 힘을 쏟겠다는 윤 목사 부부는 "우리가 못 뛰어다게 될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다"며 웃었다. 특별취재팀 = 김효진·김도형 기자, 김현희·박은희·오주연·이민아·정준영·조목인·조유진 인턴기자 hjn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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