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집트 국민들의 시위가 갈수록 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동안 150여명이 시위로 숨졌으나 이집트 국민들은 굴하지 않고 있다. 군부는 시위대에 발포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시위대와 손을 잡는 듯한 모양새다.
이집트 국민들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봉기한 이유는 뭘까?. 단순히 무바라크 정부의 개혁만을 촉구하기 위해서인가? 이같은 물음에 한마디로 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작가이자 리버 트와이스 연구소(River Twice Research) 소장인 자카리 카라벨은 1일 자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시위의 근본원인을 경제난에서 찾고 있어 주목을 끌었다.
◆봉기의 근인은 경제난=그는 '봉기의 경제적 근인들'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이집트를 집어삼키고 있는 대중운동은 눈에 뜨이지 않은채 숨어 있던 하나의 사실(fact)을 노출시켰다고 지적했다. 즉 경제개혁이 브라질에서 인도네시아에 이르기까지 전세계를 휩쓰는 시기, 중국이 인류역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인민을 빈곤에서 탈출시킨 지난 10년 동안 이집트는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10년전 IBM은 나일강 어부가 무선 네트워크 기기를 톡탁거리는 광고물을 내보냈다"면서 "그것은 매력적이었지만 거의 완전히 허구였다"고 지적했다.이집트만큼 글로벌 경제에 통합되지 않은 국가도 없다는 게 그의 지적이었다.
그에 따르면 이집트는 1인당 국민소득이 통가와 키르바티 사이인 세계 137, 인구는 세계 20위에 랭크됐다. 지난 몇 년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4~5%로 이것도 다른 나라들의 중간 정도 밖에 안된다.
이는 미국 중앙정보국(CIA)가 펴낸 월드팩트북에 나타난 수치와 비슷하다. 팩트북에 따르면 이집트는 인구 8047만명(세계 16위)의 대국이지만 국내총생산(GDP)은 지난 2009년 2168억달러에 불과했다. 구매력을 반명한 실질 GDP는 5009억달러로 세계 27위로 평가됐다. 구매력 기준 1인당 GDP는 6200달러로 세계 137위로 나타났다.
성장률은 지난 해 5.3%, 2009년 4.6%였다.
그런데도 실업률은 무려 9.7%나 된다. 카라벨은 이집트가 오랫동안 만성적인 비능률로 유명했다고 꼬집었다.
그런데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큰 돈을 챙겼다. 그는 미국의 군사원조로 매년 근 20억달러를 받았고, 수에즈 운하 관세수입으로 50억달러, 그리고 관광수입으로 100억달러를 벌었다고 한다.이 돈으로 그는 상당수 국민들을 매수했다고 카라벨은 지적했다.
◆경제개방 약속 거부한 무바라크=근대에 이집트는 아랍세계에서는 희망의 횃불이었다. 가멜 압델 나세르는 1952년 영국 제국주의의 잔재에 대항해 봉기했고 그 횃불은 나세르의 후계자 안와르 사다트가 살렸다. 사다트는 암살당했지만 그의 경제자유와 개방 시도는 그의 최대 유산이었다.
무바라크도 개방정책을 펴겠다고 했으나 그것은 입에 발린 말 뿐이었다. 지난 30년간 그는 경제활동과 혁신을 체체속에 이집트를 가뒀다.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이집트를 휩쓸 것이라며 정치적 개방 요구도 거절했다.
그 결과 이집트는 어떤가?. 인구의 약 40%가 빈곤층이다. 실업률은 9.7%나 된다.젊은층이 인구의 60%지만 전체 실업자의 90%인 나라다. 석유생산국으로서 하루 8만9300배럴의 석유를 수출하지만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의 8%에 이른다. 이를 은행차입으로 메워왔다. 또 세계 주요 원면 생산국이지만 원면 가격 상승의 혜택을 못입은채 세계 밀 수입국으로서 밀값 급등의 피해만 입고 있다.
◆현재보다 더 나쁠 순 없다=이집트 인구의 3분의 2는 30세 미만이다. 그런데 이들은 "미래가 없다"고 믿고 있다. 물론 무바라크 정부는 음식과 주택 보조금을 주고 있지만 딱 굶어죽지 않을 정도다. "아무런 희망도 없다. 그저 아무 변화없이 무감각해지는 세월만 그들 앞에 있을 뿐" 이라고 카라벨은 지적했다.
물론 이런 현실이 혁명을 초래하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나라들은 가난하면서도 조용하다. 그러나 이집트는 불씨의 전형이다. 미래는 급진정권이나 혼란으로 더 나쁠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낳은 삶에 대한 꿈이 실현되지 않은 채 끝난다는 것을 깨달은 수백만명에게는 현재 보다 더 이상 나쁠 게 없다"고 카라벨은 결론지었다.
◆빈약한 외환보유고 버틸 힘 있나=이집트가 당면한 문제는 시위 지속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감당할 능력이 있느냐이다. 이미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이집트의 국가 신용등급을 한단계 내리고 장기 전망도 '부정적'으로 바꿨다. 이렇게 되면 이집트는 해외에서 차입할 때 비용을 더 물어야 한다.
게다가 이집트에 진출한 많은 외국 기업들이 현지 사무소를 폐쇄하고 속속 빠져나가고 있다. 이집트 중앙은행은 현재 360억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달러로 바꿔 빠져나갈 경우 이집트 파운드 환율이 급등해 인플레이션에 불을 지필 수 있다. 이는 또한 이집트 불안을 증가시킬 수 있다.
아울러 이집트 금융부문이 건전하고 예금이 풍부하지만, 소요사태로 부실대출이 증가하고 대량 인출사태나 파운드화를 달러로 교환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외환보유고는 빠르게 고갈될 수 있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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