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2020년까지 500만대 전기차 운행 목표...전기차 세계 시장으로 급부상
[베이징(중국)=아시아경제 이정일 기자]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매연,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 그리고 희뿌연 하늘. 지난 12월 중순 찾은 중국 베이징은 그렇게 우울한 회색 도시였다. 경제 성장에 따른 급속한 공업화로 베이징은 특유의 붉은색을 잃고 칙칙한 안개 속에 무겁게 휩싸여 있었다.
같은 시각, 중국 남부의 선전 시내에서는 루스밍(35세)씨의 전기차 택시가 공항을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올해 17년째 운전대를 잡고 있는 루가 페달을 밟자 택시는 소음도, 매연도 없이 가볍게 속도를 냈다. 루의 택시는 중국 정부가 진행 중인 '도시 전기차 사용 패턴 테스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선전 시내 전기차 택시 50대 중 하나다.
◆ '전기차 강국' 깃발 올린 중국 = 중국이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중심으로 우뚝 서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전기차 500만대를 운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그린카 정책을 발표했다. HSBC에 따르면, 500만대는 글로벌 전기차 전체 시장의 35%에 달하는 규모다.
지난 해 1800만여대를 판매해 미국(1150만대 추정)을 제치고 신차 판매량 2년 연속 세계 1위에 오른 중국이 이제는 자동차 블루오션인 전기차까지 석권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이다. 선전의 전기차 택시는 중국의 이같은 야심을 드러내는 한 단면일 뿐이다.
선전 전기차 택시를 생산하는 중국 BYD(비야디)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2008년 지분 10%를 2억3000만 달러에 사들여 화제를 낳은 바로 그 기업이다. 버핏이 소유한 지분의 현재 시장 가치는 13억 달러로 추정된다. 지난 해 9월에는 버핏의 오랜 친구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가 비야디 신차 발표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비야디 공장과 신에너지 시설 등을 참관한 빌 게이츠는 "비야디로부터 배터리와 에너지, 운송 등에 대해 배울 것"이라고 밝히는 등 비야디의 성장 가능성에 강한 신뢰를 보냈다. 버핏의 투자와 빌 게이츠의 각별한 관심, 그리고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비야디는 중국을 대표하는 전기차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전기차에 본격 시동을 걸면서 '자동차 왕국' 미국을 위협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베이징 소재 부즈 앤 컴퍼니의 빌 루소 선임고문(자동차 담당)은 "중국은 내연기관 부문에서는 다른 나라에 뒤쳐졌지만 전기차에서는 세계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빈 웨일 GM차이나그룹 대표도 "중국은 지구상 어느 국가보다도 전기차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중국은 전기차 구매자에게 6만위안(약 1016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을 비롯해 2012년까지 전기차 개발 등에 140억위안(약 2조3722억원), 2020년까지 충전소ㆍ주차장 설치 등 인프라 사업에 50억 위안(8472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붉은 중국이 녹색의 전기차에 사활을 거는 것은 환경 때문이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세계 도시 오염도 순위 20위 권에 중국 도시가 무려 16개나 포함됐다. 전기차 도입은 배기 가스를 줄여 도시 환경 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중국 정부측은 기대하고 있다.
전기차는 중국 정부의 에너지 전략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중국 인구는 전 세계 19%에 달하는 13억명이지만 중국 내 매장된 석유는 전 세계 총량의 1% 미만에 불과하다. 사실상 석유 소비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다. 휘발유 가격도 갤런당 4달러 정도로, 중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이 연간 3000달러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비싼 편이다.
게다가 최근 차량 수요가 급증하면서 중국은 세계 석유를 빨아들이는 괴물로 변신해가고 있다. 컨설팅 기업인 PRTM의 올리버 하지메 애널리스트는 "중국은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휘발율를 사오는 것보다 경제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글로벌 격전장..CT&T 도전 주목 = 중국 전기차 시장을 석권하기 위한 기업들의 격전도 뜨겁게 펼쳐지고 있다. 중국 내 자동차 회사는 무려 120여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상위 10여개 업체가 전체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대표적 기업으론 상하이자동차, 동풍자동차, 베이징자동차 등 국가 소유 기업을 비롯해 비야드, 지리자동차, 체리자동차 등의 민간 기업, 그리고 닛산, 폭스바겐, 현대ㆍ기아차 등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측과 공동 투자한 합작법인이다.
최근 우후에 5억 달러를 들여 R&D센터를 설립한 체리자동차의 인통야오 대표는 "전기차는 중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고급 기술이면서 유행의 첨단으로 비칠 것"이라며 미래 성장동력으로 전기차에 집중할 것임을 시사했다.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을 전기차 생산 기지이자 소비 시장으로 규정하고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칼 토머스 노이만 중국폭스바겐 사장은 "2013년까지 중국 업체들과 힘을 합쳐 전기차 모델 개발ㆍ생산 기반을 마련한 뒤 2018년까지 중국 시장을 겨냥한 제품을 판매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최대 자동차업체 GM은 자사의 대표 전기차 '볼트'를 올 하반기 중국에 출시할 계획이다. 다임러는 비야디와 지난 해 5월 중국형 전기차 개발을 위한 50대50 합작사를 세웠으며, 닛산도 '리프'를 선보이기 위해 중국 파트너인 동풍자동차와 협상 중이다.
현대차그룹도 중국 전기차 진출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정명채 북경현대 브랜드전략 부장은 "지금은 내연 기관에 주력하지만 전기차 시장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저속전기차 업체인 CT&T의 행보는 특히 눈길을 끈다. CT&T는 현재 SK에너지, 북경자동차와 중국 전기차 시장 공략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다. 합작 회사는 연간 5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생산 공장을 북경에 설립해 사업을 시작하게 되며, 앞으로 전 중국을 대상으로 생산 공장과 판매망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CT&T는 또한 지난 해 10월 중국 절강성 지방정부-정뢰전기유한공사와 전기차 사업에 관한 3자 협약도 체결했다. 이로써 CT&T는 기존 문등공장(5만대)과 절강성 합작사(6만대), 북경자동차-SK에너지 합작사(5만대) 등 총 16만대의 중국 내 생산 능력을 확보하게 됐다. 이영기 CT&T 대표는 "중국 공략의 성패는 결국 글로벌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중국 진출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정일 기자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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