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하루빨리 이 며느리를 돌려보내야지 방귀 한 번 더 뀌었다가는 집터만 남게 생겼거든 (중략) 떡 조금 해 가지고 손에 들려서 시아버지 앞장세워 친정으로 보냈어."
이 내용은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말하기ㆍ듣기 교과서 12쪽에 실린 '방귀쟁이 며느리'라는 옛이야기의 일부다. 방귀를 심하게 뀌는 며느리가 결혼 후 방귀 때문에 시집에서 친정으로 쫓겨 가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여성가족부(장관 백희영)가 28일 발표한 '교과서 속에 드러난 성차별' 사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김태현)이 수행한 이번 연구 결과는 '2007년 개정 교육과정'으로 현재까지 보급된 초등학교 1~4학년 및 중학교 1학년 교과서 110권을 정밀 분석한 데 따른 것이다.
반면 초등학교 1학년 2학기 쓰기 교과서에 제시된 '방귀쟁이' 이야기는 서로 방귀가 세다고 자랑하는 두 남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 남성의 방귀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는 식으로 묘사했다. 여성이 방귀를 뀌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남성이 방귀를 뀌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라는 식으로 그려져 같은 방귀라도 성별에 따라 다르게 평가한 셈이다.
교과서에 담긴 남성 중심적인 세계관은 여성에 비해 훨씬 높은 남성 등장인물의 비율로도 나타났다. 교과서 등장인물의 성비는 여성이 37%인 반면 남성이 63%에 이르렀다. 특히 다른 저작물에서 가져온 내용에서 성비 차이가 심했으며, 중학교 교과서의 경우 남성이 71%, 여성이 29%로 남성 등장인물의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정해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방귀쟁이 며느리 이야기는 여성은 몸가짐이 조심스럽고 얌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암묵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등장인물의 배경이나 활동 면에서도 남녀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직장ㆍ일터를 배경으로 한 문장에서는 남성이 여성의 7배에 달한 반면 가사 활동을 표현한 문장에서는 여성이 남성의 4배였다. 또 가사활동 사진ㆍ삽화에 등장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5배나 많았다.
성폭력 예방을 가르치는 내용에서는 K출판사와 C출판사의 기술ㆍ가정 교과서가 성폭력의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단정 하에 피해 여성들이 겪는 후유증만 자세히 서술하고, 10대의 임신에 대해서도 여학생 혼자만의 문제로 다뤄 남성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여성가족부의 한 관계자는 "초ㆍ중등 교과서는 학교 교육과정의 핵심 요소에 해당돼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파급 효과가 매우 높다"며 "이번 연구를 토대로 앞으로는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중심축이 되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교과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상미 기자 ysm1250@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