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전 난항, 검찰 수사 등 외부 변수에 착잡...우울한 세밑 풍경
[아시아경제 이정일 기자] 갈 길 바쁜 재계가 '송구영신(送舊迎新) 딜레마'에 빠졌다. 묵은 때를 벗고 새 해를 준비해야 하는 도약의 순간에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옴짝달싹 못하는 형국이다.
인수전 난항, 검찰 수사 등 변수도 여러 가지다. 촌각을 다투는 글로벌 생존 게임에서 발목이 잡히지 않을까 우려하는 등 재계의 세밑 풍경이 뒤숭숭하다.
올해 최악의 연말을 보내는 기업은 단연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다. 지난 달 16일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현대그룹이 선정되면서 일단락될 것 같았던 인수전은 대출금 논란이 불거지면서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채권단이 14일을 마지노선으로 정해놓고 대출 계약서 제출을 요구했지만 현대그룹은 요지부동이다. 본계약으로 가든, 우선협상대상자가 바뀌든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채권단을 상대로 소송까지 불사할 기세여서 사태 장기화는 피할 수 없다.
시아주버니와 제수씨간 관계도 파국을 맞은데다 내년 경영 전략 수립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 인수를 통해 자동차-철강-건설을 3대 축으로 잇는 그룹의 성장 플랜을 제시한 바 있다. 현대그룹도 현대건설을 2020년까지 세계 5위 종합건설사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건설 인수전이 치열한 것은 그만큼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모두에게 절실했기 때문"이라면서 "현대차그룹, 현대그룹, 현대건설, 그리고 채권단까지 최악의 연말을 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검찰 수사의 칼끝이 김승연 회장을 향하고 있는 한화그룹도 한해를 보내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본사와 계열사에 대한 15차례의 압수수색, 참고인으로 소환당한 100여명의 그룹관계자 등 3개월에 걸친 수사로 그룹은 만신창이가 됐다. 예년 같으면 한창 들떠 있을 연말 분위기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수사가 장기화되면서 내년에도 '비상사태'가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직원들을 엄습하고 있다.
내년 사업 전략 수립도 사실상 먹통이 된지 오래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태양광 사업 등 신성장 동력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김 회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모든 것을 올스톱시켰다"고 토로했다.
SK그룹도 연말 분위기가 뒤숭숭하기는 마찬가지다. 최태원 전 M&M 대표의 맷값 폭행이 불거지면서 불똥이 SK그룹에 튀었기 때문이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과 무관한 일'이라며 거리두기에 나섰지만 새로운 폭행 행각들이 불거지면서 곤혹스러워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그저 하루 빨리 수사가 마무리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삼성전자도 한해를 넘기는 세밑 풍경이 개운치만은 않다. 이건회 회장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여부가 내년 7월 마침표를 찍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는 유치전을 멈출 수 없다.
전경련 관계자는 "한 해를 차분히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 이 회장은 오히려 내년 7월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면서 "재계가 이런저런 이유로 바람 잘 날 없는 연말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일 기자 jayle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