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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등등' 기업, '전전긍긍'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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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태로 보는 격세지감 '쩐의 힘'

현대차-현대그룹 인수 갈등에 외환은 샌드위치 신세로
기업들 풍부한 보유현금 바탕 산업자본 금융위에 군림시대

[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 "현대차나 현대그룹이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 대하는 것 보면 격세지감입니다. 과거 같으면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죠."


최근 현대ㆍ기아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외환은행에 실력행사에 나서는 모습에 대해 시중은행 임원이 내뱉은 자조어린 관전평이다. 금융위기 전에 돈줄을 쥔 은행에 항상 꼬리를 내려야만 했던 기업들은 최근 풍부한 보유현금을 바탕으로 오히려 기세등등하고, 은행은 주요대출처인 우량기업 앞에서 고개 숙이기에 여념이 없다. '격세지감'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기세등등' 기업, '전전긍긍'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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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산업ㆍ금융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과정에서 심한 갈등을 빚으면서 주거래은행이자 현대건설 주주협의회 주관기관인 외환은행은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외환은행이 공정한 M&A를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며 1조원이 넘는 외환은행 예금 등을 인출했다. 현대차그룹은 일상적인 금융거래라고 해명했지만 사실상 외환은행에 대한 보복차원으로 업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에 임직원들 급여계좌도 외환은행 이탈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대그룹과 채권단협의회의 재무약정체결 분쟁 역시 지난 5월부터 시작해 8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현대그룹의 버티기에 채권단은 속앓이만 하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시중에 넘쳐나는 유동성과 기업들의 막대한 현금보유액이 기업들에게 '금융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풀이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 기준으로 20조8000억원의 현금을 보유, 아시아(일본과 호주 제외) 지역 기업 중 현금보유량이 두번째로 많았다. 또 현대차는 8조2000억원으로 4위, 포스코과 LG전자도 7조2000억원과 5조6000억원으로 각각 7위와 9위에 올랐다.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 자료에서도 삼성전자의 현금성자산보유액이 19조2700억원으로 20조에 육박했고 현대차도 7조3000억원에 달했다. 현금보유액이 많다고 이들 기업이 은행으로부터 여신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의 경우 현금자산보유액의 1.5배에 달하는 12조원의 여신을 안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각종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들은 가장 큰 수익원인 안전대출처를 찾지 못해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들에 목을 매고 있다는 점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의 경우 다른 은행에서 차환대출을 받아 외환은행 여신을 모두 정리할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 예대율을 보면 이 같은 상황이 실현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지난 9월말 현재 15개 시중은행의 예대율은 99.3%에 불과하다. 100만원을 예금받아 99만3000원 밖에 대출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7000원은 대출이자를 못챙기는 무수익자산인 셈이다.


더욱이 예금은행의 기업대출 전월대비 증가율은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9월을 전후해 추락, 올 들어서는 한번도 1%를 넘은 적 없고 지난 6월과 8월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대출해준 금액보다 기업들이 상환한 금액이 오히려 더 많았던 셈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향후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될 정도로 기업-은행간 관계변화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성호 기자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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