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1990년 서문여자중학교. 이어폰을 귀에 꽂은 키다리 소녀의 눈은 동그래졌다. 달팽이관을 타고 들려오는 힘찬 선율. 평소 듣던 음악은 아니었다. 기타, 드럼, 베이스의 오묘한 조합과 찢어질 듯 터지는 가수의 고음. 가슴에선 어느덧 열기가 돋아났다. 그리고 이내 음악을 향한 동경의 씨앗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동덕여자고등학교 재학 시절까지 배우 김정은의 꿈은 가수였다. 하드락을 즐겨들으며 밴드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 몇몇 곡들을 연주하며 부를 정도의 상당한 실력. 하지만 바람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움만 쌓여갔다. 그리고 연기생활에 발을 담근 뒤로 음악은 점점 추억의 책장 속으로 사라져갔다.
소멸은 아니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피는 끓고 있었다. 실력도 화석처럼 굳지 않았다. 무뎌졌을 뿐이었다. SBS 월화드라마 ‘나는 전설이다’ 대본을 받으며 김정은은 이를 절실히 실감했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영화 ‘식객2’에서 각각 소화한 핸드볼과 요리는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밴드는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꿈이었다. 출연 제의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바로 기타를 집어 들었다.”
영화 ‘국가대표’, ‘미녀는 괴로워’로 스타 음악감독 반열에 오른 이재학까지 합류하자 김정은은 이내 자신의 모든 것을 ‘나는 전설이다’에 쏟아 부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동료배우 홍지민, 장신영, 쥬니와 함께 발을 맞추며 ‘컴백 마돈나 밴드’로 분하려 노력했다.
불타오르는 밴드에 대한 열정은 누구도 말릴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나는 전설이다’ 한 관계자는 “촬영 전부터 김정은이 투혼을 발휘했다”며 “밤샘 연습으로 코피를 터뜨렸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인중으로 흘러내리는 붉은 선혈. 하지만 김정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다시 조우한 음악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하늘은 노력을 배신하지 않았다. 처음 선보이는 브라운관에서 김정은은 극 중 밴드 보컬로 분하는 ‘전설희’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배우인지 음악인인지 정체성을 헷갈릴 만큼 캐릭터에 심취해갔다. ‘전설희’라는 술은 그만큼 달콤하고 독했다. 그래서 김정은은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시작하는 신인으로서의 자세를.
“신인가수로 거듭나는 장면을 찍으며 처음 머리를 깎고 데뷔했을 때의 열정과 재회할 수 있었다. ‘나는 전설이다’를 찍는 내내 이전의 나를 보게 된 것 같아 기뻤다. 아무리 힘들어도 모두 참아낼 수 있을 만큼.”
그는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모두 불사했다. 가장 큰 장애는 당일 지급되는 쪽 대본이었다. 김정은은 “솔직히 연기에 몰두하기 무척 어려웠다”면서도 “드라마의 중심인 까닭에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부릴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13년의 연기 경험을 통해 주인공이 한 번 흔들리면 드라마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3일에 한 번 눈을 붙일 수 있던 강행군. 모두가 화려하다고 부러워하는 벤 안에서 링거를 연거푸 맞아야 했던 아픔. 그는 모든 역경을 딛고 또 하나의 작품을 이력에 추가했다. 하지만 매번 마무리 뒤 밀려오는 허탈감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김정은은 아직 모른다. 자신의 어린 시절 꿈이 담긴 ‘전설희’와 어떻게 헤어져야 할 지를. 그래서 여느 때처럼 그냥 웃어넘긴다.
“마지막 방송에서 전파를 탈 펜타포트 공연에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다 한 것 같다. ‘전설희’의 대사지만 진짜 드라마를 마치는 내 심경과 같다.”
그는 마지막 방송에서 말했다. “여고시절부터 해 온 수많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준 멤버들에게 감사하다”고. “나의 모든 것이었던 음악과 인생에게 마지막 노래를 부르겠노라”고. 김정은은 고마워했다. 자신의 인생에게. 그리고 음악에게. 20년 전 마음속에 뿌린 동경의 씨앗은 어느덧 활짝 꽃봉오리를 피웠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스포츠투데이 박성기 기자 music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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