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날이 갈수록 '대기업 때리기'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6.2 지방선거 이후 본격적으로 강조한 친서민·친중소기업 정책이 이젠 대기업에 대한 섭섭한 마음과 함께 역할론으로 구체화 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27일 저녁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지난 10년간 우리 경제가 성장했으나 서민들이 체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면서 "대기업들은 미소금융 같은 서민정책에 적극 동참해 사회적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종전보다 구체적이고 공식적으로 대기업의 역할을 주문한 것으로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매일같이 '대기업 역할론' 꺼내는 MB
지방선거에 패배한지 일주일여만인 지난달 11일 이 대통령은 서울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를 방문해 "대기업도 진정으로 바닥 민심을 알고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은 지방선거 이후 처음으로 민생현장을 방문한 날이기도 했다.
7월에 접어들어서는 집권후반기 국정운영의 전면에 '서민'을 내세웠다. 이달 6일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경기는 분명하게 회복세지만 소상공인, 영세자영업자, 일반 서민의 생활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다"면서 "특히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크다. 다른 예산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취약계층을 위해서는 각별한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3기 참모진과 첫 수석비서관회의를 했던 지난 19일에는 "궁극적으로 비서실이 역할을 잘해서 '선진 대한민국', '선진 일류국가' 목표를 달성하자. 이 목표의 중심에는 항상 서민을 둬야 한다. 국정 3대 목표도 서민이나 약자를 염두에 두고 살펴라. 약자, 서민, 젊은이 등 일자리는 전략적으로 주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는 "미소금융이 대부분 대기업 출자인데 본업이 아니다 보니 미흡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대기업 CEO가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22일 서울 강서구 미소금융 포스코지점을 방문해서는 "큰 재벌에서 일수 이자 받듯 하는 것은 사회정의상 안맞지 않느냐"면서 "대기업이 하는 캐피탈이 이렇게 이자를 많이 받으면 나쁘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대기업 캐피탈사의 고금리와 관련해 23일 청와대 참모진과 다시 회의를 열어 "대기업을 쥐어짜는 게 아니라 공정하게 하라는 얘기다. 대기업이 현금 보유량이 많다. 투자를 안하니 서민이 더 힘들다"고 꼬집었다.
◆대기업 때리기..집권후반기 군기잡기?
이 대통령이 대기업에 세운 날은 매우 구체적이다. 지금까지 지적된 것으로 미소금융 지원과 캐피탈사 고금리 문제, 중소기업과의 상생, 투자 확대 등이 대표적이다. 청와대 참모진들도 대기업의 SSM(기업형수퍼마켓) 확대를 비롯 중소기업 영역에 무차별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같은 '대기업 역할론'은 반(反)대기업 정서를 바탕으로 한 '대기업 때리기'와는 다소 다른 양상이다. 이 대통령은 대기업 CEO 출신으로 누구보다 대기업의 상황을 잘 알고 있고, 기업인과의 핫라인 개설 등 친(親) 기업 행보를 지속해왔다.
이 대통령은 27일 "일부에서는 내가 반(反) 대기업 정책을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런 게 아니다"면서 "원래 경제가 성장하면 양극화가 확대되는 게 아니라 성장에 의해 좁혀져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런 효과가 없으니 더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도가 40%를 넘는데 지방선거에서 예상외의 패배를 겪으면서 서민들이 경기회복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양극화에 따른 박탈감만 커졌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 과정에서 대기업이 자기 밥그릇만 챙기고 중소기업 지원과 투자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는 소홀했다"고 알렸다.
이 대통령은 이와관련 "경제성장을 통해 양극화의 간극을 줄여나가야 하며 지금은 그런 선순환을 위한 시작 단계에 들어섰다고 본다"면서 "일자리 창출과 투자,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 문제에서 대기업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집권후반기 주도권을 거머쥐기 위한 포석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친서민' 국정철학과 언제든 레임덕이 올 수 있는 집권후반기라는 시기적인 요소가 맞물려 있다"며 "이 두가지를 모두 풀어내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해석했다.
여권 관계자는 "7.28 재보궐선거 결과를 봐야겠지만 앞으로 이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하는 데에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라면서 "친서민은 국정의 큰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명분 있는 카드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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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주 기자 yj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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