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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DNA]"난 화약쟁이요!" 뚝심·진실 한평생 '다이너마이트 金'

재계100년-미래경영3.0
창업주 DNA서 찾는다
<6>한화그룹 김종희 회장①


신용ㆍ정직ㆍ의리-인간성 중시의 리더십
"돈 더 벌려고 설탕 들여올 수 없다" 신념
기업 통해 조국 근대화 기여 실천 강조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화약은 진실하다. 화약은 반드시 폭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약은 정직한 장소에서 정직한 시간에 폭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화약을 만드는 사람은 경영자를 중심으로 관리자, 기술자, 기능원 등 모두가 화약처럼 진실되고 정직해야만 한다. 또한 화약 사업의 리더들은 인간성 중시의 리더십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고(故) 현암 김종희 한화그룹 선대 회장은 늘 '화약에 담긴 진실성'을 강조했다. 자신은 물론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경영자 상이 화약의 성질과 닮았기 때문이다. 카리스마가 넘쳤던 현암은 창업부터 신용과 정직성 그리고 의리를 기본으로 삼았다.

독실한 성공회 신자였던 그는 자율과 책임을 중시하는 사풍을 강조했다. 호암의 '정도 경영'은 기간 산업에 집착이 강했던 1960년대 화약을 비롯해 석유화학, 기계, 에너지 분야로 영역을 확대하고 1970년대 서비스 산업으로 사업 분야를 다각화, 그룹 경영의 기틀을 잡는 근간이 됐다.


민족 수난기에 태어나 성장하고 교육 받은 현암은 '한평생 사업을 통한 보국(報國)'의 일념 아래 기업 경영 자체가 곧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았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좋아진다'는 사명을 갖고 일을 했으며 '현재가 아무리 훌륭하고 우수하고 완벽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문제점이 있고 개선할 것이 있다'는 정신을 지닌 창업주였다.


그는 해방 이후 나라의 틀이 갖춰질 무렵에 '화약'을 통해 기업인으로서의 인생을 점화했다. 나라 경제가 오랜 질곡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국가 기간 산업의 한 부분을 묵묵히 일궜던 그다. 현암의 삶과 사업은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외길' 자체였다. 현암은 "학문적, 전문적 기술 개발 능력도 중요하지만 감각 경영 능력을 지녀야 하고 우수한 두뇌 기술도 필요하지만 훈훈한 마음 기술(mind tech)을 가지고 사업을 해야 성공한다"고 믿었다.


6.25 등 혼란기를 틈타 소비재 산업에 주력해 기업의 규모를 키울 수도 있었지만 현암은 당시 소비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조국 근대화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기간 산업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기업을 통해 국가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창업주 현암의 생각은 확고부동했다. 화약의 국산화가 요원하던 시기 화약을 수입해 제 때에 적정량을 공급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현암은 생각했다. 당시 영업부장 유삼렬은 현암이 전례가 없는 500t이라는 막대한 화약을 한꺼번에 수입하려는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암은 이미 폭발적인 화약의 수요를 예측하고 많은 물량을 확보하려 했던 것. 영업부장은 화약 대신 설탕 등 다른 생필품을 들여올 것을 제안했다. 사실 당시는 전국의 산업 시설이 파괴된 상태로 생산되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무 물건이나 생활에 필요한 것만 수입해 오면 떼돈을 벌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화약은 폭발물이라는 위험성 때문에 수입해 오는 데도 선박 편에 제한이 따랐다. 수입 이후에도 경찰에 일일이 신고를 했으며 파는 것도 마음대로 팔지 못했다.


그러나 현암의 대답은 단호했다. "몇십 배가 남는다고 해도 난 설탕이나 페인트를 들여올 달러가 있으면 단 얼마라도 화약을 더 들여올 겁니다. 나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송충이요. 화약쟁이가 어떻게 설탕을 들여와요? 난 갈잎이 아무리 맛있어도 솔잎이나 먹고 살 거요!"


이렇게 화약계를 지켜야 한다는 현암의 일관된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후에도 한화그룹의 사세 확장은 기간 산업 위주로 이뤄졌다. 조국 근대화에 기여하겠다는 그의 신념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울 좋은 구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현암이 창업 후 줄곧 추구한 기업 이념이었다.


화약에 대한 현암의 애정은 다음의 일화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화약류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전국의 화약고에 화약류를 비축했던 현암은 6.25 전쟁이 발발했는데도 피난을 가지 않고 홍제동 화약고에 쌓여 있는 다이너마이트 3000상자를 지키기로 결심했다. 경찰관서와 주고받은 문서 등을 소각한 후 인민위원회에 화약 재고품을 신고하면서 "화약은 위험하고 중요한 것이므로 기술자가 아니면 관리할 수 없다"며 의연하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이후 현암은 9.28 서울 수복 시까지 숨을 죽이며 생활하다가 유엔군이 진격해오자 미군 지휘관을 찾아 화약고를 안전하게 조처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1.4 후퇴로 상황이 바뀌자 화약 관리 주무 부서인 외자관리청으로부터 5대의 트럭을 빌려 22.5㎏짜리 화약 상자를 밤새 영등포 창고로 운반했다. 그리고 부산으로 피난해 대창동에 영업소를 개설하고 부산영업소를 본거지로 전란 속의 영업 활동을 수행했다.


1952년 휴전 회담이 진행되자 화약 수급 활동에 전념해 온 현암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귀속 재산이던 조선화약공판을 민간인에게 불하 매각을 결정한 것이었다. 이는 전쟁 때문에 중단된 정부 귀속 재산의 민간 불하를 재개한 데 따른 것이었다.


현암은 1952년 6월 관재청에서 실시한 조선화약공판 매각 입찰에서 23억4568만원에 낙찰, 운영권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현암은 인수 계약을 체결하고 그 해 10월 9일 화약공판을 인수 운영할 새로운 회사 법인으로 한국화약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한국화약이 화약 공판 업무의 민간 시대를 열며 한국 화약 산업사를 새로 쓰기 시작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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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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