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L";$title="[권대우의 경제레터] 유쾌한 점심";$txt="";$size="250,129,0";$no="2009090909561598018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토포하우스 오현금 박사가 보내온 글
어제 오후엔 잠시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회색빛 하늘이 살며시 내려앉은 모습을 보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에 잠기는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세월의 화살을 피할 수 없다는 대목에 생각이 미치는 순간, 주어진 시간을 더 잘 써야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2009년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이미 많은 시간을 뒤로하며 두 달만 남겨놓게 됐습니다. 꿈과 희망을 안고 출발한 소의 해. 소처럼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일하면서 한 해를 보내려 했지만 아쉬움에 대한 기억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 인사동에선 한오 작가의 ‘흙손-투우(透牛)하다’(토포하우스에서 11월10일까지)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 전시회를 소의 해가 역사 속 과거로 묻히기 전에 세웠던 계획을 마무리하고 가라는 경고로 받아들였습니다. 2009년이 시작됐을 때 세웠던 계획들을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토포하우스(www.topohaus.com)를 경영하고 있는 오현금 사장이 두 장밖에 남지 않은 달력-시간의 의미, 새로운 시작의 지혜를 전해 줬습니다. 그는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아트· 디자인 갤러리의 새로운 영역을 찾는데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그를 통해 세월의 화살과 동행하는 소중한 지혜를 공유해보고 싶었습니다.
오현금 박사가 보내온 글을 읽으며 새롭게 출발하는 목요일 되시길 바랍니다.
“나는 시작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나의 의지로 시작하는 일도 있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작되는 일도 있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언젠가는 시작이 있었는데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조차 기억 못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항상 시작은 좋다. 희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시작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단어들은 ‘출발’, ‘처음’이다. 그러면 또 다시 연상되는 어휘들은 신선함, 불안함, 초조함, 두려움, 설렘 등이다.
초등학교 시절 달리기 출발선에 서면 왜 갑자기 화장실을 가고 싶었는지, 제대로 준비 못하고 시험장에 들어갈 때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곤 했다.
잘 해보겠다는 각오로 시작을 하고 출발을 하지만, 그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꽤나 오래전에 본 ‘쿨러닝’이라는 영화가 있다.
100m 달리기 선수가 서울 올림픽 출전을 꿈꾸며 열심히 준비했지만 대표 선수 선발전에서 동료가 넘어지는 바람에 같이 탈락하게 된다. 실망한 주인공은 우연히 단거리 선수가 동계올림픽의 봅슬레이 종목에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친구와 함께 왕년의 금메달리스트를 찾아가 코치가 되어달라고 졸라 허락을 받아낸다.
겨울이 없는 자메이카에서 봅슬레이 경기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팀을 구성하고 연습용 썰매로 훈련하여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얘기다. 참 감동적이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준 영화라서 늘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얼마 전 상영된 ‘국가대표’라는 영화는 1996년 무주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급조된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의 실화를 토대로 한 우리나라 이야기다. 스키점프는 가끔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생소한 스포츠이다. 높은 곳에서 경사를 따라 쭉 내려오다 어느 지점에서 휙 날아서는 땅에 닿는 것을 보며 저렇게 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올림픽의 종목으로 금메달을 따기 위해 시합하는 경쟁 종목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삶을 살다 ‘스키점프 국가대표’라는 이름하에 모여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대표라는 단어는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책임감이 따른다. 반장, 회장, 사장, 원장, 실장, 단장 등 수많은 작고 큰 모임에는 대표가 있다. 스포츠 분야에서 국가대표가 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태권도, 씨름, 권투, 농구, 배구, 축구 등 그 무엇이든 동네에서 친구들과 하다가 작은 시합을 거쳐 학교 대표, 그 지방의 대표가 되고, 전국체육대회도 나가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야 국가대표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가끔은 행운이라는 게 있다. 스키점프라는 종목이 무엇인지조차 모르지만 잠시 스키를 탔다는 이유로, 그 시간에 꼭 팀을 만들어야하는 절실한 사정 때문에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은 채 국가대표가 된다.
국가대표로서 금메달을 따게 되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며 상상초월의 악조건 훈련을 거치면서 국가대표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게 된다. 올림픽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바친 숱한 시간과 노력을 던져버릴 수가 없기에 오늘도 하늘 가운데로 몸을 날리며 꿈을 키우고 있다.
없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시작이건, 또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출발이건 모든 ‘시작’은 좋은 방향으로 발전 지속되기를 바란다.
요즘 컴퓨터를 사용하다보면 ‘delete’라는 삭제 기능을 많이 사용하게 된다. 글자를 잘못 썼을 때 그냥 누르기만 하면 지워지고, 다시 쓸 수 있다. 사람과의 만남도, 인생도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삭제’를 누르면 지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젊은이들이 누구랑 사귄 지 며칠 되었다고 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 오늘부터 사귀자고 말하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문제인데 어떻게 가능할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냥 한번 두번 만나다 싸우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고, 미운 정 고운 정 들어 지나온 세월 탓에 지울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안고 갈 수도 없어서 끙끙대는데….
가을이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가을비 내린 후 하늘은 더욱 맑고 은행잎의 노랑 색깔은 더욱 진해지고, 바람에 몸을 맡긴 낙엽은 이리저리 뒹굴고, 옷을 벗은 나무는 추운 겨울을 견뎌나갈 것이다. 그러면 또 다시 봄이 온다. 나목은 봄이 되면 푸르른 새옷을 입는데 우리의 인생은 또 다시 봄을 맞을 수 없다.
꿈을 안고 시작한 2009년. 이젠 남은 두 장의 달력이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어떻게 살았나? 무엇을 하며 살았나? 소의 해가 시작될 때 소처럼 성실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는데 혹시나 얕은 꾀를 쓰며 살지는 않았는지. 느리지만 근면하게, 여유로움을 가지면서 살고 싶었는데, 소 등에 탄 쥐가 먼저 뛰어내려 12갑자의 맨 앞에 있게 되었듯이 남의 힘을 빌려 꾀를 부리며 살지는 않았는지….
하지만 아직 두 달이나 남았으니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 반쯤 담긴 물잔을 보고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루가 지나면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또 다른 시작을 할 수 있는 행운이 매일 매일 찾아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큰 시작도 있고 작은 시작도 있다. 똑같은 시작도 있지만 또 다른 시작도 있다. 나는 매일 매일 나의 삶을 시작한다. 같은 사람을 만날지라도 어제의 만남이 다르고 오늘의 만남이 다르다. 내일은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린다. 시작할 수 있는 하루하루가 나에게 주어지는 한 그날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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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 회장 presid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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