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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수용소에 위안부 있었다


2차 대전 중 나치 독일이 강제수용소에 위안소를 설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로이터통신은 17일(현지시간) 작가 로베르트 좀머(35)가 곧 출간할 '강제수용소의 위안소'(Das KZ Bordell)를 인용해 나치 치하 독일과 유럽에서 위안소들이 운영됐다고 보도했다.

나치의 위안소 운영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좀머는 "2차 대전 역사에서 나치의 위안소 운영 사실이 오랫동안 터부시돼왔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고통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강제수용소 이미지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42년 나치 친위대(SS)는 오스트리아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에 첫 위안소를 개설했다. 이후 총 10개의 위안소가 곳곳에 설치됐다.


그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이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위안소다. 아우슈비츠 위안소에서는 모두 21명의 피수용 여성이 성 노역에 동원됐다. 좀머는 총 200명 정도의 여성이 성 노역에 시달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애초 SS가 이들 여성에게 6개월만 위안소에서 일하면 석방시켜주겠다고 회유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SS는 유대인과 소련군 전쟁포로의 위안소 이용을 금했다. 유대인 여성을 위안부로 차출하지도 않았다.


나치가 수용소 안에 위안소까지 설치한 것은 피수용자들의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대다수가 20대 초반이었던 위안부들은 다른 피수용자보다 많은 음식을 제공 받았다. 대우도 상대적으로 덜 가혹했다. 대신 이들 위안부는 주중에 저녁 8~10시, 일요일 오후마다 남성 피수용자들을 위해 일해야 했다.


규제는 엄격했다. 심지어 독일인 피수용자는 독일인 위안부에게, 슬라브족 남성은 슬라브족 여성에게 가야 했다. 허용된 시간은 15분. SS 요원들은 구멍으로 성행위까지 감시했다.


좀머는 강제수용소 10곳을 모두 돌아다니고 과거 피수용자 30명도 인터뷰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위안소를 이용했노라고 털어놓았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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