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왔다. 학생들은 방학으로 직장인은 휴가로 들뜨는 이 때, 색다른 분야에 흥분(?)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흉가 탐험대.
이런 부류 인간들은 꼭 여름이면 폐쇄된 병원이나 기도원, 혹은 외딴 곳의 버려진 집을 찾아 전국을 떠돈다.
흉가 탐험대를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도 만들어진다. "XX시 외곽의 흉가에서 하룻밤" 자고 왔어요",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이상한 물체가 같이 찍혔어요" 등의 게시물이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온다.
인기가수 서태지는 싱글앨범을 발표하기 전 흉가에서 찍은 가짜 다큐멘터리 형식의 티저 광고로 홍보를 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흉가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뭘까? '집'이라는 가장 안락하고 안전한 곳이 언제든 가장 무서운 장소로 바뀔 수 있다는 심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 주온 시리즈는 우리 일상생활의 핵심요소인 '집'이 공포의 매개체로 등장하는 영화다.
6년전 첫번째 극장판 시리즈가 개봉했을 때 밤늦은 시각 지하철역을 지나던 여성이 역사 벽에 걸린 '주온' 영화포스터를 보고 실신한 사건이 있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에게 '확실히 무서운 영화', '보고나서 찝찝한 영화'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성공한 영화 '주온'.
일본의 현대공포물은 '공포가 전염된다'는 특성을 지닌다. 공포의 주체와 인연을 맺은 사람은 끝까지 귀신이 따라다닌다는 측면에서 이영화는 '링'이나 '착신아리'같은 영화와 비슷하다.
그러나 링, 착신아리가 비디오테이프나 휴대전화 등 이동할 수 있는 매개체에 의해 원령이 옮겨다니는 것에 반해 이 영화는 움직이지 않는 집이 원혼의 집합소이다.
주온은 주원(呪怨)의 일본식 발음으로 '죽은 자의 저주'를 뜻한다. 이저주의 원혼이 죽은 자가 생전에 살던 장소에 쌓여 '업'이 된다. 업은 이집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있는 사람, 혹은 그런 사람들과 관계가 있는 이들을 끝까지 따라다닌다.
이 영화가 무서운 이유는 첫째로 영화의 배경이 너무나 평범하다는 것이다. 별다른 배경음도 없으며 영화는 조용한 공기의 흐름이 느껴질 정도로 차분하다.
주인공간의 관계도 평범하다. 할머니와 간병원, 아들 하나를 둔 부부, 오빠와 동생, 여고생 3총사 등 별다른 원한관계가 없던 평범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원혼이 전파된다는 것이 관객들에게 공포를 준다.
주온의 헐리우드판 리메이크인 '그루지'가 별로 무섭지 않았다는 사람들의 주된 비평 중 하나가 "서양배우들이 정적인 분위기를 살리는데 실패하고 소리만 질렀다"는 것이었다.
두번째로는 극장판과 오리지널 비디오 시리즈부터 감독을 맡았던 시미즈 다카시는 정교한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그는 일본내에 떠돌던 도시전설을 영화속에 녹여내는데 있어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주온에 나오는 공포소재는 모두 일본에서 닳고 닳도록 회자됐던 것들이다.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에도 나왔던 '그림자 귀신'을 비롯해 죽은 사람의 얼굴이 벽에 나타나는 '인면벽', 엘리베이터층마다 똑같은 아이가 창너머로 비친다는 '승강기 괴담'등이 그것이다.
일본 최고의 도시괴담채록집 '괴담 신미미부쿠로(怪談新耳袋)'의 이야기들이 대부분 이런 소재를 담고 있지만 이를 하나의 스토리로 완성한 건 감독과 작가의 역량때문일 것이다.
그 주온의 '탄생 1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주온 원혼의 부활'이 올 여름 개봉했다. '주온-하얀 노파', '주온-검은 소녀' 2편의 비디오 시리즈를 하나로 묶은 이영화는 역시 비극적인 일가족 살인사건이 일어난 흉가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시리즈 특유의 '평범함 속 공포'가 사라지고 유산 등 자극적인 소재로만 향하는 것 같아 살짝 아쉽다.
박충훈 기자 parkjov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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