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재단법인 청계’의 설립을 맞아 많은 감회를 느낍니다. 제 삶의 한 단면이 정리된다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저 스스로도 이런 날이 언제가 될지 궁금했습니다.
제 인생은 우리 시대의 많은 분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현대사가 빚어낸 드라마의 한 축소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독하게 가난한 집안의 자식이 대통령이 되기까지 대한민국이 ‘기적의 역사’를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또 그 역동적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따뜻한 손길을 받지 못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새벽마다 늘 이웃과 저를 위해 기도하셨던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야간 고등학교라도 꼭 가야 한다고 저를 이끌어주셨던 중학교 담임선생님, 주경야독의 고등학교 시절, 시장 통에서 가게 앞에 좌판을 놓고 장사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가게 아저씨, 일용직으로 일하는 저에게 책을 주시면서 대학 입학시험을 보라고 강하게 권유하셨던 청계천 헌책방 아저씨, 막상 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자 등록금을 미리 당겨서 마련해 주면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할 수 있도록 대학 4년간 일감을 주셨던 이태원 재래시장의 상인들……. 이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오늘이 있기까지 저를 도와주신 분들은 하나같이 가난한 분들이었습니다. 그 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의 하나가 오늘도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을 위해서 제 재산을 의미롭게 쓰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20대에 입사하여 30대에 CEO가 되고, 열사의 나라에서 시베리아의 동토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누비며 대한민국 산업화의 선봉에 서 있었습니다. 불과 98명이 다니던 조그만 기업을 16만 명이 다니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모시고 일했던 고 정주영 회장님과 동료들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를 위해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꽤 오래 전부터였습니다. 기업을 떠나면서 저는 이미 그 생각을 굳혔고 ‘신화는 없다’라는 책에서 그 생각을 밝힌 바 있습니다.
저에게 살면서 진정한 기쁨을 준 것은 일과 삶을 통해 만난 분들과의 따뜻한 관계와 그것을 통한 보람과 성취였지 재산 그 자체는 아니었습니다. 일생 열심히 일하면서 모은 저의 재산은 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정말 소중하게 사회를 위해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마침내 오늘과 같은 날이 왔습니다.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제가 모든 것을 일임했던 추진위원 여러분께서 저의 뜻과 정성을 잘 헤아려 재단을 설립해주신 노고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이런 마음이 영글도록 한 뿌리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많이 배우지 못하셨고 정말 가난했지만 늘 남을 위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어머니의 말씀과 행동은 지금도 저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어머니와의 약속을 실천했다는 것을 뿌듯하게 생각하며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 흔쾌히 동의해준 제 아내와 자녀들에게 더없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확신하건데, 재산보다 더 귀한, 더욱 큰 사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합니다. ‘재산이 있는 사람’이나 ‘재산이 없는 사람’이나 ‘힘을 가진 사람’이나 ‘힘을 갖지 않은 사람’이나 ‘고용을 하는 사람’이나 ‘고용이 되어 일하는 사람’이나 ‘큰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나 ‘작은 장사를 하는 사람’이나 우리는 모두 처한 위치는 달라도 존엄하고 평등한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뿐만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가 서로가 서로를 돕고 사랑과 배려가 넘쳐나는 따뜻한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고대합니다. 우리 사회가 물질로서만 아니라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제 진실한 소망입니다. 사랑이 없는 물질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제가 있도록 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9년 7월 5일
재단법인 청계 설립자
이 명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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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 기자 skz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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