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 화장실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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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를 여행하는 항공기에서 꼭 필요한 시설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이다.
하지만 ‘여객기 시대’가 도래한 초창기에는 항공기에 화장실이 없었다고 한다. 승객들은 고도 1만 피트 상공의 항공기 안에서 생리적인 욕구를 참거나 변기 대용으로 기내 구석에 설치된 빈 통에서 일을 봐야만 했다. 안전한 비행을 책임지는 조종사들도 비행 전 몸 관리를 철저히 한다곤 하지만 생체 리듬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급한 상황에 부딪쳤을 때 조종사들은 조종석에 앉은 채로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서 그 안에 소변을 본 후 창문을 열어 버렸으며, 아예 비행기 바닥에 구멍을 뚫어서 그 구멍에 일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기내에 독립 화장실이 설치된 최초의 항공기는 1938년에 첫 비행을 한 프로펠러 항공기 더글러스 DC-4였다. ‘스카이 마스터(Sky Master)’라는 애칭이 붙은 DC-4는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광복 직후인 1947년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은 국적 항공사가 없던 당시 한국에 노선을 개설했는데, 노스웨스트 항공이 취항한 항공기가 바로 96석 규모의 DC-4였다. 이 항공기는 그해 첫 비행을 했는데 여의도 공항을 출발한 후 도쿄·알류산 열도·앵커리지·에드먼턴(캐나다)을 경유한 끝에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도착했다. 비행시간은 무려 40여 시간이었으며, 요금은 편도가 약 1000달러였다고 한다. 당시 한국의 1인당 GDP가 57달러 안팎이었으니 그 가격이 얼마나 비쌌는지 알 만하다.
당시 DC-4에는 이동식 화장실이 설치됐는데 독립 화장실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공항에 도착하면 변기를 들어낸 후 일일이 청소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1945년 취항한 장거리 여객기 DC-6은 탱크 식의 고정식 변기를 처음으로 설치해 공항에 도착한 후 오물 청소차가 와서 변기를 청소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1950년대 들어 항공사들은 장거리 노선에 프로펠러 항공기 대신 제트 여객기를 취항했다. 제트 여객기 시대의 도래는 기내 화장실의 수준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는데, 우선 변기가 본격적인 수세식으로 바뀌었다. 또한, 화장실 내에는 세면시설, 전기면도용 소켓, 간단한 화장품 등도 비치해 가히 호텔 수준으로 변모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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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압력차 이용한 오물 처리해= 기내 화장실과 관련해 황당한 루머가 제기되고 있는데, 사연은 이렇다.
과거 대서양 횡단 여객기에 탑승한 초비만형 여자승객이 기내 화장실에서 용변을 봤는데 다 그만 앉은 자세에서 플러시 버튼(황색 버튼)을 눌러 버렸다. 마침 여객기가 고공을 날고 있던 터라 내외의 기압차이가 너무 커 거구의 엉덩이가 그만 변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변좌로 부터 꼼짝없이 묶여 빠져 나갈 수 없게 됐다. 여자 승객이 긴급호출을 통해 객실 승무원을 불렀지만 방법을 찾지 못해 변기에 앉은 채로 비행기에 머물게 됐으며, 공항에 착륙 후 3명의 정비사가 조치를 해 간신히 자유의 몸이 됐다고 한다.
또 기내 화장실에서 처리된 인분은 잘게 잘라셔 하늘에서 땅으로 뿌려진다는 다소 황당한 소문도 돌았는데, 결국 정부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황갈색 알갱이는 비행기에서 버리는 인분(人糞)이 아니라 꿀벌 똥’이라는 내용의 홍보 책자를 만들기까지 했다.
이렇듯 기내 화장실과 관련한 이야기가 도는 이유는 현대적인 기내 화장실의 오물처리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벌어진 것이다.
신형 항공기는 우선 세면대에서 사용한 물은 비행 중 기내 압력과 외부 압력의 차이를 이용해 항공기 외부로 배출된다. 배출된 물은 압력차를 통해 미세한 입자 형태로 분출되고, 분출된 입자는 곧바로 결빙돼 지상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변기에서 사용된 오물과 물의 처리방법은 구형 기종과 신형 기종에 따라 차이가 있다. B747·A300·MD-80·F-100 등의 항공기는 오물을 변기 아랫부분의 탱크(정화조)에 물과 함께 저장한 후 공항에서 거둬가는 ‘수세식(Flush-Type)’ 화장실이 설치됐다. 탱크에 모인 혼합물들을 필터에 통과시켜 맑은 액체만 분리해 살균·탈취·착색 등의 위생처리 과정을 거친 다음 이 물을 모터가 뿜어줘 변기 벽을 씻어주는 방식이다. 수세식은 변기 사용 횟수가 거듭할수록 걸러지는 물이 맑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탱크가 변기 아래에 있어 냄새가 난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B747-400·A300-600·A330·B777 등의 신형 항공기는 수세식이 아닌 ‘공기 흡입식(Vacuum-Type)’의 화장실이 설치됐다. 이 화장실은 기내 압력과 탱크의 압력차를 이용해 사용된 물을 반복 사용하지 않고 물 탱크의 깨끗한 물을 사용해 변기를 씻고, 오물은 기내 맨 뒤쪽 객실 아래 화물칸에 장착된 2~4개의 탱크에 버리는 방식이다. 구형 항공기와 달리 사용된 물을 반복 사용하지 않고 깨끗한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위생적이지만, 변기에 오물을 버릴 때 압력차에 의한 흡입 소음이 크게 난다. 기내에서 화장실을 사용한 후 버튼을 누르면 나는 ‘쉑쉑~’하는 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항공기 제작사는 설계 과정에서 화장실당 35~40명이 이용한다는 가정에 따라 화장실 숫자를 정하며, 항공사의 요구에 따라 증설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일등석은 10명당 1개, 일반석은 35명당 1개를 기준으로 화장실이 설치된다. 기내 화장실은 본래 남녀 구분이 없으며, 좌변기 1대·세면대 1대·페이퍼 타월 등의 비품도 갖춰졌다. 최근에 나온 기종은 창문이 설치되 바깥을 바라보며 일을 해결할 수 있다.
항공기의 성능 개선, 항공사들의 쾌적한 항공 여행 서비스 노력 덕분에 기내 화장실도 많은 발전을 해왔다. 그런데 기내 화장실이 객실 내 유일한 독방이라는 점을 이용해 일부 승객들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을 벌여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항공사들은 안전한 비행을 위해 승객들에게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워서는 안되며, 세면대 사용 후 휴지로 닦아놓는 등 기본적인 에티켓을 꼭 지켜 줄 것을 당부했다.<자료 제공: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채명석 기자 oricm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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